아빠로부터의 해방

나의 아빠와는 다른 너의 아빠

by 유자씨

아빠는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사람이다. 부드럽고 고소한 생선살인줄 알고 꿀떡 삼켰는데 목에 콕 박혀 내려가지도 않고 빼낼 수도 없는 그런 생선가시 말이다. 마치 부드러운 살코기만 있는척하고 내 목에 들어와 뾰족한 가시를 박아버렸다.


배신자 같으니라고.






아빠가 술을 진탕 마시고 온 다음날이면 이유 없는 투정이 시작되었다. 칼같이 잡힌 바지주름이 두줄이라는 이유로 엄마에게 다리미가 날아갔다. 끓인 보리차를 넣어두었던 유리병은 바닥에 산산조각이 났고, 나는 또다시 시작된 이유 없는 싸움에 방문뒤에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새 옷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칼각이 잡힌 정장바지는 이미 엎질러진 보리차물과 깨진 유리병 조각에 젖어 흐물거려진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일을 하러 나가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한바탕 싸움으로 뒤덮어 위안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빠는 금쪽이에 나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아다. 그런 금쪽이를 아무런 훈육도 하지 않은 채 세상으로 내보내고 결혼까지 시킨 친할머니는 오은영박사님에게 눈물콧물을 흘릴 정도로 정신 차리라는 소리를 들어 마땅한 무개념 엄마이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보기에도 어이없는 트집으로 시작된 싸움이었다.


옷투정은 그렇다 쳐도 왜 꼭 다 차려둔 밥상 앞에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지금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짜다고 상을 뒤엎고, 맵다고 반찬들이 날아갔다. 이건 뭐 놀부도 아니고 무슨 심통을 그렇게 부리는 것인지 흥부가 기가 막히다 못해 눈코입까지 다 막힐 노릇이다. 가정형편이 썩 좋지도 않았던 우리 집에서 날아다니던 음식들이 나는 그저 아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몇 숟갈 못 떠먹고 바닥에 널브러진 그 음식들을 보며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음식들을 주워 담으며 제발 아빠의 일방적인 시비가 더 길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람은 한번 위기상황을 겪으면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경계태세를 갖춘다. 밥상이 차려지고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내 위는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더 이상 음식을 넣지 말라는 위의 거부반응인 것이다. 명치아래가 딱딱해지면서 더 이상 배고픈 느낌도 없어진다. 지금생각해 보면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는 환경이다.


놀부심보 같으니라고.







국제시장에서 일명 '강사장'으로 통하던 아빠는 일본에서 손님들이 오면 산의 이곳저곳을 관광시켜 주고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가이드였다.


삼남일녀 중 첫째로 태어난 아빠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삼촌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혜택을 받으며 아주 곱게 자랐다. 친할머니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머리가 비상해서 혼자 천자문을 떼고 고등학교 때 독학으로 일본어를 마스터했다고 한다. 키가 크고 수트빨이 잘 받는 데다 일본어까지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는 멋쟁이 '강사장'은 국제시장 인기남이었다. 아빠가 일하러 나가는 날에는 엄마가 다려준 반듯한 정장바지와 와이셔츠를 입었다. 바지와 세트로 된 재킷을 걸치고 캐시미어로 된 블랙 롱코트를 걸친다. 포마드를 바른 반짝이는 머리를 빗으로 쓸어 넘겨 잔머리한올까지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왁스로 광을 낸 구두를 신고 손잡이가 있는 가죽 핸드백을 옆구리에 끼면 아빠의 출근룩이 완성된다.


일본에서 손님들이 한국관광을 올 때면 아빠는 몇 박 며칠씩 그 관광객들과 일심동체가 된다. 함께 술 마시고, 함께 놀고, 함께 먹고, 마치 자신이 일본인 관광객이 된 것처럼 온마음을 다해 즐긴다. 그렇게 일심동체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본인들은 아빠가 마치 진짜 형제가 된 것 마냥 호의를 베풀고 돌아간다. 사회 속에서의 아빠는 세상에 없을 호인처럼 배려하고 양보하는 매너남이었다.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결혼 전 이미 임신 중이었던 나는 혹여나 내가 결혼한 이 남자도 우리 아빠와 같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였다. 머릿속으로는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빠와 비슷한 모습이 보이거나 싸움의 전조증상들이 보이면 나는 이미 아빠를 대하듯 남편에게도 방어태세를 갖추고는 했다.


사람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은 아빠와 비슷했다. 남편이 술약속이 있는 날이면 나는 일단 긴장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남편을 관찰할 때도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예민함을 잔뜩 장착하고 어떤 행동과 말들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잠자리에 들면 그제야 나도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런 나의 예민함을 알아차린 남편은 행동으로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결혼한 지 7년째인 지금까지도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평상시와 다름없이 씻고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지금은 신랑의 술약속이 있어 늦게 들어와도 마음 편히 아이와 먼저 잠자리에 들고는 한다.


가족들과 함께 술자리를 할 때에도 아빠는 늘 싸움으로 끝이 났다. 이모들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날은 엄마와 또 피가 터지게 싸우는 날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도 변함이 없다. 늘 유쾌하고 재밌는 모습이다. 이모들과 이모부들 사이에서 나 없이도 함께 술 마시며 재밌게 놀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나는 입을 닫고 혼자 꾹 참는다.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말을 하면 싸움이 일어나는 그 분위기와 상황이 싫어서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랑은 끝까지 내 기분이 왜 나빠졌는지 왜 내가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말과 마음을 기다려주고 들어주었다. 내가 서운해했던 부분을 진심으로 사과해 주고,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조차 몰랐던 나의 아빠는 그저 우리 앞에서 아빠라는 권위만 내세웠다. 그러다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와 잠자는 우리를 깨워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위안했다. 그러나 신랑은 달랐다. 딸아이와 소통하고 교감하며 몸으로 함께 놀아준다.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는 아빠이자 아이의 존재를 늘 감사함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결혼 후 내가 생각했던 아빠의 모습과 다른 새로운 아빠의 모습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아빠와 보낸 시간들이 정말 모두 다 최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던 신랑이 딸아이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에 아주 작은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있던 날이었다. 이런 날은 1년 365일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희귀한 날이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었고, 내가 대여섯 살 쯤이었던 때였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셋이 함께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웃었고, 다정하게 대화하는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주 평화롭고 안전한 느낌이었다. 래도 다행이다. 아빠와의 추억 속에서 행복한 기억이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어서.


신랑과 아빠는 다른 사람이다. 나와 아빠도 다른 사람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와 동일시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른 하나의 객체로 존재하며 비슷한 상황이나 삶 속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며 나만의 삶을 살아간다. 유전적 기질이나 모습은 닮았을지라도 나와 부모님은 다른 사람이다. 아빠엄마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고 해서 나 또한 불행할 것이라 짐작하며 나의 상처를 과거 속에서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선택 속에서 나만의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으니까.



인간의 뇌가 불안에 잠식당했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하면
다시 안정감을 느끼는 뇌로 재배선된다.

인간은 유아시절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사람과 사랑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며,
성인이 되어 자신이 자기를 사랑하려고 애쓰고
또 안정적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
지속적인 사랑을 하면(5년 이상)
인간의 뇌는 재배선되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태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불어 자기 자신이 자기를 양육하는 것을 통해서도 인간은 치유되고 성장한다.

<모녀의 세계 p. 51~52> -김지윤-



나의 뇌는 재배선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로 구성되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목에 찔린 생선가시는 빼내어야겠다.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아빠로부터 해방시키고, 성인이 된 나를 스스로 양육하며 치유하고 성장해나가 한다.




나의 아빠와는 다른 너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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