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저 여기 왔어요. 저희 아이가 아직 버스에 타고 있어요. 버스 좀 세워주세요!!!
눈앞에서 아이가 타고 있는 노란색버스를 놓쳤다. 버스를 세우려 힘껏 달렸다. 그러나 버스는 따라가는 나를 보지 못한 채 그냥 가버렸다. 유치원에 전화하려고 휴대폰을 꺼냈다. 키보드 자판 숫자들을 아무리 정확하게 눌려도 자꾸만 다른 숫자가 눌러졌다.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절망감에 울다 눈을 떴다. 꿈이었다.
'휴... 진짜가 아니야. 꿈이야. 꿈일 뿐이야. '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아이를 기관에 보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종류의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내가 잠에 깊이 들어서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지 못한다거나, 아이를 태운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상황의 꿈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혹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예지몽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내 불안은 더욱더 심해졌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반복되는 꿈을 꾼다는 것은 이런 상황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무의식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나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상황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기다리며 불안했던 나의 모습을 투사하여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 이 모든 것은 나의 불안에서 기인했던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셨던 엄마는 매일아침 나를 할머니댁에 데려다주고 출근하셨다. 할머니품에 안긴 채 나는 엄마에게 웃으며 빠빠이를 해주었다. 그렇게 엄마가 가고 나면 뒤돌아 할머니 어깨에서 소리 없이 흐느꼈다. (할머니피셜)
아이를 업고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든 채 걸어가던 엄마는 아빠에게 짐 하나만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폼생폼사였던 아빠는 엄마를 쌩까고 혼자 걸어가 버렸다. 엄마는 서러움에 눈물을 훌쩍였고 엄마등에 업혀있던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엄마피셜)
"에휴. 그때는 왜 그리 바보같이 살았는지. 지금 같으면 짐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던지고 너 하나만 데리고 어디로 가버렸을 텐데."
엄마가 깊은 한숨으로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말씀하셨다.
나는 한자리에 앉혀놓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얌전한 아기였다고 한다. 내가 5살 때즈음 친할머니가 자주 다니던 미용실에 나를 데려갔다. 나에게 파마루트를 감아둔 채 미용사분과 할머니는 동네친구분들과 함께 동양화를 치셨다. 몇 시간이 지나도 애가 엥 소리도 없이 가만히 있으니 나의 존재를 잊으셨단다. 그렇게 나는 두피에 딱 달라붙는 웨이브머리를 가진 마이콜이 되었다.
나는 늘 엄마를 기다렸다. 혼자여서 무서울 때도 엄마를 기다렸고 깊은 잠에 못 드는 날에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늘 바빴고, 지치는 삶 속에서 힘들어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나의 불편한 감정들은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서 착한 딸이 되기로 했다. 나의 불안하고 불편하고 슬프고 힘든 안 좋은 감정들은 모두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로 인해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면아이는 자라지 못한 채 몸만 커버린 나는 어른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모습을 보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이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은 어른이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헤어지기 싫으면 헤어지기 싫다고 엉엉 소리 내어서 울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떼쓰고 소리 지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부모님에게는.
딸아이가 태어난 지 48개월이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시키기 위해 일주일 동안 1시간씩 나와 함께 어린이집생활을 했다. 아이는 마치 키즈카페에 놀러 온 듯 새로운 환경에 대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탐색하고 즐겼다. 일주일의 적응기간이 지나 어린이집 문 앞에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부턴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재밌게 놀고 오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했지만, 충분하다는 형용사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엄마와의 헤어짐이 충분한 설명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이었다.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린이집 바깥까지 들려왔다. 창문 뒤에 숨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까지 한참을 숨어 지켜보며 나도 울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3년 만에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불안했다. 그렇게 나는아이가 없는 조용한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 한참을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워킹맘이 아닌 이상 3살까지는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아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합리화시킬 명분이었다. 24시간 동안 영유아시기의 아이와 붙어있는다는 것은 출근도 퇴근도 휴가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과도 같았다. 나만의 시간이 없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길을 잃은 채 정처 없이 방황하는 사람처럼, 목적지 없이 무작정 모르는 길을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면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주말에 잠시 신랑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자유부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고,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틈타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말에 아이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불안했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분리불안이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계속 시계만 쳐다보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체크했다. 아이가 낮잠을 잘 때에도 휴대폰을 보며 아이옆에 누워있는 것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착각했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할수록 나 또한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 적응되었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조금씩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지 1년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연약하고 소중한 나의 분신 같은 아이를 지켜내야 했다. 원래도 예민했던 나였지만 내 몸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내 아이를 지켜야 했다. 인간은 불확실함 속에서 가장 큰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런 불안 속에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은 아이를 다시 가정보육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 팬더믹과 함께 1년간 다시 아이를 가정보육했다.
딸아이가 5살이 되자 유치원에 입학했다.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지만 더 이상의 가정보육은 나에게도 딸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잘 적응하며 다니던 딸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부터 아침마다 나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울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자신이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첫 번째 이유는 엄마랑 헤어지기 싫고, 두 번째 이유는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싫다고 했다.
불안은 그 어떤 감정들보다도 전염성이 강하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염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걱정했던 내 마음속 모든 불안들을 아이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매일 아침 등원버스를 타기 전 아이 손바닥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볼에 손바닥을 대면 엄마가 느껴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또 엄마와 같이 있고 싶지만 용기를 내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 아이의 머리 위에 용기풍선이 달렸다고 말해주었다. 하원할 때는 용기풍선이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에 달려있을지 확인해 보자는 약속과 함께 우리는 잠시 헤어졌다. 하원버스에서 내리며 나를 반기는 아이의 웃음과 나를 안아주는 포옹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엄마~~~~~!!! 나 머리 위에 용기풍선 몇 개 생겼어요?"
"우와!!! 머리 위에 용기풍선이 스무 개나 생겼어! 세상에 무슨 일이야~ 그럼 내일은 얼마나 더 많이 생기는지 한번 볼까?"
얼굴 가득 뿌듯함과 자신감에 찬 귀여운 꼬마아가씨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 뒤로도 머리 위에 용기풍선 수백 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적응해 나간 유치원생활도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내면아이도 양육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나의 내면아이도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호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그렇다면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부분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이미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모호함은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순신장군이 불안을 마주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썼듯, 나 또한 글을 써 내려가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의 불안들로부터 해방하려 한다. 더 이상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여 돌봐주고 흘려보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