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으로부터의 해방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다.

by 유자씨

마음이 물에 젖어버린 종이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종이 위에 내가 썼던 그림도 글씨도 다 번져 흐물 해진 것 같은 날, 언제 찢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 그런 날엔 아무리 단단해지려고 애써도 물에 젖어버린 종이가 다시 마르지 않을 것처럼, 번져버린 종이 위에 내 흔적들이 모두 다 의미 없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보 같아 보이는 나를 자책하며 되뇐다. 다 소용없다고.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 아무 일 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아무 일 없이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 어린 시절의 나에게 행복은 아빠엄마가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한번 술을 마시기시작하면 끝을 낼 줄 몰랐던 아빠는 발동이 걸리면 몇 주씩 술에 젖어 살았다. 그러다 엄마와의 싸움이 시작되면 누구 하나는 최소 전치 8주는 받아야 한동안 평화가 유지되었다. 다치고 피를 보는 그 누군가는 늘 엄마였다. 내가 7살쯤이었던가. 아빠한테 당한 폭행으로 엄마는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물론 쌍방폭행이긴 했으나 늘 엄마가 더 많이 다쳤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는 집에서 나와 외할머니 댁으로 피신했다. 얼굴과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나는 말했다.


"엄마, 제발 아빠랑 이혼하면 안 될까?"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그저 눈물만 흘렸다.


매번 외할머니댁으로 피신하기도 미안했던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잠을 잘 수 있는 절에 가기도, 이모집에 가기도, 엄마친구집에 가기도 했다. 한동안은 모텔에서 지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알았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어?"


"글쎄... 엄마가 미안해..."


나의 질문은 지금 나의 삶이 불행하다고 엄마에게 소리치는 것이었고, 엄마의 대답은 나의 불행을 해결해 줄 수 없는 미안함이었다.


나의 불행은 늘 아빠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 불행은 아빠가 돌아가심으로써 끝이 났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며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 이상 밤에 잠자리에 들며 아빠엄마가 싸우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평화로운 환경이 중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며, 아빠가 없어진 세상에서도 나의 불행은 라지지 않았다.

무리한 대출로 아파트를 사고, 가게를 운영했던 아빠엄마는 이미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하루하루 돌려 막기로 겨우 버텨왔던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자 우리와 함께 상속포기각서를 썼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빚도 상속이 된다는 것을. 엄마는 파산신청을 했고,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던 우리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법원에서 나온 아저씨 두 분이 우리 집의 모든 가전제품과 가구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가셨다. 수능을 끝낸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알아보았다.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산으로 먼저 떠났다. 나는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빨간딱지가 붙여진 집에서 한동안 혼자 지냈다. 이불도 베개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베고, 거실을 비추는 달빛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다.


엄마는 고깃집을 운영하시면서 류머티즘 관절염을 얻었다. 온몸이 퉁퉁 붓고 뼈마디를 칼로 찌르는듯한 통증으로 진통제를 밥 먹듯 먹었다.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나의 대학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술집, 고깃집, 옷가게등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번 돈은 모두 우리 세 식구의 생계유지비가 되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과 아픈 엄마를 대신해 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 되었다. 더 많은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엄마의 아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돈이 많으면 덜 불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놓지 않았으면 하셨다. 마는 늘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다. 한부모가정으로 기초생활 수급신청을 하고, 구청에서 지원하는 청년 일자리를 알아왔다. 그렇게 나는 작은 초등학교에 새로 생긴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 내 인생에서 정말 큰 기회이자 터닝포인트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 많은 책들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었고,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속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다시 수능을 준비했고 나는 스물셋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엄마는 몸이 아파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보험회사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같이 산에 올라 기도했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도 산에 오르는 엄마를 보며, 더 이상 내 삶이 불행하다 생각하며 투정 부릴 수 없었다. 우리 집 상황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말했다. 아픈 엄마와 어린 동생이 있는 내가 대학을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그러나 엄마는 그 상황 속에서 나를 대만으로 유학까지 보냈다.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만 보고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자리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엄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우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냈다. 어느덧 나는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무 살,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 할 때였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던 학교로 출근을 할 때마다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학교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작은 분식집 하나가 나온다. 500원이었던 핫도그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월급이 나오면 그대로 집의 생활비로 쓰여야 했던 시기였기에 스무 살의 나는 늘 빈털터리였다.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어도 차비가 없었고,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신랑과 데이트를 하러 갈 때에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내가 차비 부쳐줄게. 일단 우리 만나자."라며 스무 살의 나를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신랑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읽던 책 속에 오만 원이 꽂혀 있었다. 직접 나에게 주면 부담스러울까 봐 몰래 책 속에 꽂아두었던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있었기에 막막했던 현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풍요로운 음식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겨울이 시작되고 처음 나오는 비싼 딸기를 딸아이에게 사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엄마가 건강한 모습으로 손녀딸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감사하다. 지금은 2천 원이나 하는 핫도그를 먹고 싶을 때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스무 살의 나를 잃지 않도록 해준 고마운 나의 친구들과 아직도 만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해 준 사람이 나의 남편이 되어주어 감사하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니 불행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불행이 사라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은 마음을 조금은 편안히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불행의 반대말이 행복이라 생각했을 때, 행복은 마치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았다. 간절히 원해서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지만 다가서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그런 신기루. 그러나 불행의 반대말을 '나의 평범한 하루'로 고쳐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더 이상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었다. 행복은 늘 내 옆에 함께하고 있었다. 미리 볼 수 없는 인생의 걱정과 불안 속에서 나를 지켜주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광각렌즈와 같은 삶을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들로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한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삶에서 불행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주 가까이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있었다. 마치 이게 끝인 것처럼. 더 이상의 내일은 없을 것처럼.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그 불행도 인생이라는 커다란 그림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 뿐이었다. 주 아주 작은 한 조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나의 고통을 마주할 때면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흐물거려진 마음이 다시는 마르지 않을 것처럼 고통 속에서 허우적 댄다. 다만 지금은 예전처럼 그 속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을 뿐이다. 고통 속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 내가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일종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다.


딸아이가 4살 때였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집에 커피머신을 들였다. 아침에 일어나 라테 한잔을 마시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컵에 부워둔 우유 속으로 내려오는 커피를 보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커피가 우유를 간지럽히고 있어! 우유가 커피를 안아주는 건가 봐!! 그럼 나도 엄마 안아줘야겠다 우유처럼!"


나를 꼭 안아주던 딸아이의 말랑함을, 딸아이의 숨결을 떠올린다. 물에 젖었던 내 마음이 햇빛에 말린 듯 보송하게 마를 수 있도록. 더 이상 불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 대지 않도록. 나의 소중한 일상에 더 감사하고 나의 일상을 함께해 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글을 쓸 수 있는 일상에도 감사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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