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들었던 나의 전공수업은 문자학이었다. 매주 월요일 1,2교시였던 문자학 수업은 모든 전공수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이다. 수업이 재밌거나 쉬워서 좋았던 건 아니다. 그저 여태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독특한 캐릭터인 문자학 교수님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도 나는 교수님의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개량한복처럼 생긴 삼베옷을 입고 천으로 된 벙거지 모자를 쓴 교수님은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젊고 아저씨라고 보기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교실문을 열고 교단에 선 교수님의 얼굴은 마치 '도인'같아 보였다. 달마대사의 눈썹처럼 두텁고 긴 눈썹은 눈가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고, 자연스럽게 주름진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쓰고 있던 벙거지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무심히 툭 내려놓으시고는 분필을 잡고 칠판에 글씨를 쓰셨다.
'탁탁 탁탁탁'
칠판에 글을 쓰는 소리가 마치 백색소음처럼 편안하게 들렸다. 여섯 글자를 쓰고 우리 쪽으로 돌아서서 웃으며 첫 입을 떼셨다.
"따오커따오 페이창 따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자 <도덕경>의 중심사상인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를 읊으셨다. 목소리와 이미지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서 하마터면 '풉'하고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얇은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발음은 선명했다. 발걸음과 손동작 하나하나가 슬로모션을 걸어둔 것처럼 느릿느릿했지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교수님의 목소리, 행동, 생김새까지 전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노자의 도덕경 내용과 하나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를 설명하면서 똥을 예로 드셨다. '이것은 마치 똥이 똥이지만 똥이 아닌 것과도 같다.'라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로 풀이해 주셨다. 모든 학생들이 똥이야기가 나오자 첫 수업의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노장사상의 열혈팬이셨다. 문자학 수업이었지만 사실 문자학에 대해서 배운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 문자학 교수님은 늘 '道(도)'와 장자사상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사상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가시는 분 같아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늘 구름 위를 걷는듯한 발걸음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문자학 교수님을 보고 있으면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 나를 뽐내지 않아도 자연의 일부처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문자학 수업을 듣고 나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 고요해져서 좋았다.
살아오면서 닮고 싶은 부류의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문자학 교수님은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평온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삶과 일치시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적어도 수업시간에 만난 교수님의 모습은 내가 만나왔던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평온하고 고요한 사람이었다.
늘 감정의 노예처럼 살아왔던 나는 감정의 높낮이가 너무도 심했다. 내가 언제 기분이 안 좋은지 어떨 때 기분이 좋아지는 지도 잘 몰랐다. 이유 모를 내 감정의 변화에 술을 마시거나 달콤한 음식들을 먹어대며 감정의 기복을 달랬다. 그러나 우는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라고 사탕을 주는 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법일 뿐,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진짜 나를 알지 못한 채 나를 안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살아왔던 것이다.
신랑과 연애할 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결정'하는 문제였다. 데이트할 때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물어보면 나는 항상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신랑이 결정해 주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혹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택하고는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느꼈기에 늘 결정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생각은 나를 잘 알지 못했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결정도 감정도 모두 다 내 몫이어야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인들의 하루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인 '오늘 점심은 뭘 먹지?'라는 물음에 나는 항상 '아무거나 상관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죽을 먹어야 되는 상황이 아니면 늘 다른 사람들이 먹자고 하는 메뉴를 따라먹었다. 단순한 결정이지만 나는 과거의 경험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요소를 피하기 위해 상대와 공동체 속에서 눈치를 보며 좀 더 평화로운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런 결정이 반복되면서 진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 마음속에는 공허함만 남았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배려를 스스로 하며 늘 희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피해자인 척하며 살았다. 습관처럼 상처받고 그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만 찾으려했다. 늘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휘청이는 내 모습이 바보 같다 생각했다. 땅속에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처럼 단단해지고 싶었다.
두 발로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릴 때의 불안함이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패닉이었다. 대만이 일본만큼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지진을 겪었을 때의 그 공포감은 잊을 수가 없다. 기숙사에서 샤워 중이었던 나는 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에 내가 빈혈이 있나 싶었다. 그리고 몇 초 뒤 건물이 요동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옷을 걸쳐 입고 머리 위에 베개를 감싼 채 기숙사벽에 몸을 기대어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흔들림이 멈춘 듯했을 때 나는 여권과 휴대폰만 챙기고 재빨리 기숙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11층이었던 내 방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치 110층을 내려가는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뒤로도 여진이 수차례 발생되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만의 모든 건물에는 내진설계가 되어있어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더 많이 흔들린다고 했다. 그날밤 침대에 누워 기숙사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도 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흔들리며 휘청이는 내 모습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 더 오만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는 갈대가 뿌리 깊은 나무보다 더 단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 수많은 치우침들 속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알아가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칭을 한다. 그동안 너무 편안한 자세만 취해서 바른 자세를 취했을 때 통증이 따라온다. 편안한 자세만 해왔던 나의 치우침을 조금 불편하지만 바른 자세를 잡아 몸의 중심을 곧게 세우려 한다.
잠자리에 일어난 뒤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욕실로 가서 양치를 한다.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신다. 무조건 시원한 게 좋아서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했던 나였다. 그러나 위가 약한 나는 소화가 안되고 위경련으로 몇 번의 응급실을 다녀오고 나서야 나의 치우침을 깨달았다. 나를 위해서 차가운 물 대신 미지근한 물을 마심으로써 나의 위를 보호해주고자 한다.
수영을 배운 지 1년이 다되어간다. 수영을 배우는 재미에 치우쳐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주 5일 동안 매일같이 수영수업을 갔다. 하루 중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80%를 사용하고 와서는 녹초가 되었다. 어깨와 등근육도 긴장한 채 회복될 시간을 주지 않아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는 일주일에 3번 정도만 가려고 한다. 재미로 하는 운동 시간과 내 몸이 필요한 운동을 하는 시간을 적절히 교차시켜하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사랑하는 마음에 치우쳐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밥을 대신 먹여준다던지, 양치를 대신해 준다던지, 대소변을 대신 닦아준다던지...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사랑임을 깨닫는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에드시런이나 샘스미스, 아델의 노래를 듣는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비치나 데이비드게차의 일렉트로닉 믹스를 듣는다. 슬플 때는 성시경이나, 잔나비, 킨더가든의 노래를 듣는다. 글을 쓸 때는 재즈음악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피아노 클래식음악을 듣는다.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면 바깥공기를 쐬며 한 바퀴 산책을 하려고 한다.
양극단으로 치우침에 흔들려보았기에 나는 그 중심에서 나를 발견했다. 치우침 속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나의 삶을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로 채우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 중심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평온함이고 고요함이지 않을까. 장자의 호접몽처럼 내가 나비이고 나비가 나인 듯, 도를 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듯, 내진설계된 건물들이 지진을 맞이하며 흔들리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듯, 수많은 흔들림 속에 몸을 맡겨보아야 나만의 중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흔들림 속에서 나만의 빅데이터를 쌓아가는 중이다.언젠가는 문자학교수님과 같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자연 속 일부처럼 , 우주 속 별처럼, 치우침에서 해방되어 고요하고 평온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