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지금 이 순간, 나의 천국을 살아가기를

by 유자씨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아.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아.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걸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2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먼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면서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다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 일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모든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안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1화 미정의 대사 中 -




2년 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몰아보며 다시 보기를 몇 번이나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11화 속 여주인공 미정의 독백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친구가 대신 내 마음을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절절히 공감하기도, 내가 하지 못한 생각에 감탄하기도 하며 몇 번을 돌려보며 위의 대사들을 메모해 두었다.


'나 여기 왜 있어요...?'








나는 몽상가이다. 현실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자주 하는 사람. 그런 나에게 '존재'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흥미로운 생각거리가 되고는 했다. 존재와 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맞닥뜨리는 문제가 있다. 바로 '신'의 존재여부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믿음으로써 존재하는 바로 그 '신' 말이다.


눈을 감는 게 두려운 밤들이 있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이 세상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여 눈을 감지만 잠들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엄마가 내 곁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운 날들이 있었다. 매일밤 엄마가 잠에 들고 나면 진짜 숨 쉬고 있는 게 맞는지 엄마의 코밑에 내 손가락을 대고 숨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잠에 들고는 했다.


나에게는 엄마가 신이었다. 엄마가 믿는 신은 부처님이었지만 나는 엄마를 믿었다.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면 나도 그러했고,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한 것이라 믿었다. 엄마의 불안, 좌절, 슬픔, 절망, 아픔이 나의 것이라 믿었다.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이 곧 나의 세상이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분리될 준비가 안 된 채 몸만 커버린 어른아이였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부터 침에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걷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난 왜 늘 불안한지, 이불속에서도 사람들 속에서도 안착한 적 없는 것 같은지, 왜 딴애들처럼 해맑지 못한 지, 왜 늘 불안함에 가슴이 뛰는지, 왜 늘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지, 왜 늘 인정받지 못해 안달하는지.


진한 빨간색 립스틱을 입술 위에 바르고 또 덧바르고 다시 또 덧바르던 시간이 있었다. 아무리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도 내 눈에는 희미해 보였다. 반짝거리는 펄새도우를 아무리 덧발라도 빛나지 않아 보였다. 새빨갛고 새파란 색깔들을 손톱 위에 물들여도, 아무리 강한 색으로 덧칠을 해도 내 존재가 희미한 것 같아 보였다. 진한 향수들로, 반짝이는 보석들로 내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저 여기 있어요.
여기 이렇게 살아있어요.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뒤엉켜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내 마음속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히자 모든 것이 하나 둘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두 발을 꾹꾹 눌러 땅을 밟는다는 것이 이토록 안정감이 드는 행위였던가. 나의 발바닥으로부터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었다. 내 눈으로 보는 푸른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들을, 나의 몸을 적시는 빗방울의 감촉들을, 한 겨울 코끝과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추위를, 더운 여름 머리를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을, 새순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봄의 내음을,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떨어트린 낙엽의 바스락 거림을. 그렇게 사계절을 오롯이 걸으며 온몸으로 느끼고 나니 이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었음을. 나는 나이기에 존재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존재를 증명해 낼 필요가 없었음을. 나는 그저 '나'이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우리가 하는 매 순간의 선택을 켜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생과사는 신에 의해 주어진다 하더라도 매 순간의 선택은 인간의 몫이 아닐까?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가 수없이 넘어지며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는 것처럼, 신은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넘어지는 기회를 줌으로써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할 뿐이다. 신은 우리의 믿음 속에 존재하며 나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들 속에서 흔들리는 내가 잠시나마 붙잡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뿐이다.


지금껏 나의 삶 속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코 '아빠'였다. 드라마나 영화 속 빌런처럼 나의 모든 상처와 아픔 고통들은 아빠를 관통해서 나를 스쳐갔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그 시절 느꼈던 감정들과 상황들이 뒤섞인 채 오직 나의 시점으로 이해한 산물 뿐이었다.


아빠의 장례가 끝나고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소파에 잠깐 잠든 내 꿈에 아빠가 나왔다.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초록물결의 잔디밭 위에 검은색 리무진 한대가 서있었다. 아빠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둘에게 팔을 붙잡힌 채 연행되듯 차에 탔다.


"아빠!! 아빠... 가지 마..."


내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자살을 한다는 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아빠는 신에게 벌을 받기 위해 잡혀가는 것이었을까? 신이 부여한 삶을 자신의 선택으로 끝냈기 때문에? 만약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남아있는 우리가 빠의 흔적과 함께 삶을 살아내는 것으로 치른 것이라면, 저 세상에서 아빠가 받아야 할 벌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끝이 나쁘다고 해서 지나온 과정들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아빠의 인생이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모두 부정당하지 않기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경험들만으로 아빠를 다 안다며 착각하고 판단하지 않기를. 나의 고통과 슬픔이 크다는 이유로 아빠의 고통과 슬픔의 크기를 외면하지 않기를.


아파만 하지 않기를.

슬퍼만 하지 않기를.

미워만 하지 않기를.

후회만 하지 않기를.

불안해만 하지 않기를

미안해만 하지 않기를.


아파도 하고, 슬퍼도 하고, 미워도 하고, 후회도 하고, 불안해도 하고, 미안해도 하기를. 그리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만족하기를. 이 모든 것이 함께 버무려진 채 느끼는 것이 행복임을. 나의 삶이 행복했다 기억하기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지금 이 순간을 내가 존재함으로 마음껏 누리기를.







해방일지를 쓰면서 과거의 기억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발가벗겨진 기분에 부끄럽기도 했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고, 어떻게든 써내는 내 모습에 안도하기도 했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내 삶 속에 놓아둔 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글을 쓰려 붙잡고 늘어진 모든 시간들 속에는 '지금 이 순간'이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풍요로운 우주 속에서 우주가 사랑하는 아이로 존재하고 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평온함과,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음을. 또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한다. 그렇게 스스로 행해왔던 모든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지금 이 순간라는 나의 천국을 살아가려 한다.





지금 이순간, 나의 천국을 살아가기를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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