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우리가 사는 공간 속 공기에도 기분이란 게 존재한다.
까르르하고 웃는 아기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공기 속에서 오로라빛 무지개가 떠오르는 듯 모두를 무장해제 시킨다. 반대로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면 그 공간은 거대한 화마가 들끓듯 뜨겁고 공포스럽다. 그렇게 불같이 싸운 뒤의 공기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살이 아리듯 아프다.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있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눈물이 그들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더 이상 눈물을 흘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눈물을 흘리는 대신 엄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으로 내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눈물흘리던 그 아이는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슬픔에 젖어든 엄마를 위로하는 든든한 아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내 손으로 엄마의 눈물을 훔쳐줄 때만큼은 아주 잠깐의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스스로 평화주의자라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지도, 미움받을 용기도 없었다. 싸우거나 다투는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회피하면 할수록 내 마음속에서 자라지 못한 그 아이는 눈물을 멈추는 방법을 잊어갔다. 아무리 차가운 얼음으로 덮어도 그 속에 있는 불덩이는 계속해서 얼음을 녹였다.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불덩이가 나왔을 땐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용암이 폭발하듯 흘러넘쳤다.
얼음으로 덮어댄다고 끓어오르는 용암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짜 평화는 현실을 회피하고 외면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마음속에서 울던 그 아이는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자꾸만 다른 것으로 감추려고 했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다시 나에게 화살처럼 돌아와 후회와 자책만 남겼다.
나는 평화주의자를 가장한 기회주의자였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했다. 싸움의 공기가 주는 차가운 기분이 싫지만 그 차가움을 마주할 용기를 내어야 비로소 진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기,
외면하지 말고 인정하기.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 뒤엔 평안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