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학창 시절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엄마가 아프지 않는것'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건강해서 나를 좀 더 잘 챙겨줬으면 하는 나의 욕심이었다. 아침 등굣길에 건강한 모습의 엄마가 현관 앞에서 배웅해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었다. 밤새 끙끙 앓다 새벽에 먹은 약이 독해서 비몽사몽 잠을 깨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괜찮다 하였지만 괜찮지 않았고, 아파도 맘 편히 아플 수 없는 자신의 아픔이 자식에게 늘 미안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나 또한 그녀의 아픔이 꼭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의 아픔이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아서 화가 난다. 속상함이라기엔 좀 더 크고 분노라기엔 좀 더 작은 그런 화가 마음속에서 생겨난다. 내가 더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지, 이렇게까지 아프기 전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자책과 반성이 밀물처럼 와르르 몰려온다.
속마음과 다르게 내 입에서 나가는 말들은 자책감과 속상함이 응고되어 짜증과 화를 품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간다. 이지경이 될 때까지 왜 그리 참기만 했는지, 아프면서도 왜 그리 악착같이 그 모든 것을 혼자 다 감당해내려 했는지 원망과 미안함이 담긴 비수를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꽂는다. 그렇게 한바탕 마음속 화를 풀어내고 나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비수가 꽂혀있다.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사는 것이 빠쁘고 고달프기에 자신에게 가혹했던 것이었을 뿐. 그 또한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그리된 것이었을 뿐이다.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니 토닥여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마치 나의 아이가 아플 때처럼, 괜찮아질 것이라 말해주며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아픔을 겪는 이는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해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견고히 다져야 한다. 반대로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마주하는 이는 자책하기보다 상대방의 아픔을 인정해 주고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한다.
아프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기에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혹사시켜 왔던 나의 몸을 다시 되돌아볼 기회로 여기고 자신을 돌봐야 한다. 서로의 미안함이 되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Lov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