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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버튼이 눌러질 때

ep.03

by 유자씨




매일 아침마다 가는 수영장의 휴관일이었다. 날아침 등굣길에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좋겠다. 수영 안 가고 집에서 놀 수 있어서... 나도 학교 안 가고 쉬면 좋겠다."


"니 누가 그래? 엄마가 집에 있으면 논다고? 집에 있으면 엄마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청소기도 돌려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옷정리도 해야 하고..."


발작 버튼이 눌러진 것이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편견이 거울처럼 반사된 것이다. 상 모든 일에는 늘 양면이 존재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자격지심이 되어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준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발끈하고 이내 못난 자신의 모습에 당혹스러워지고는 한다.


발작 버튼이 눌러질 때 보통 화살이 상대를 향해 가있다. 하지만 잠시만 마음속 일시정지 버튼을 한번 누르고 마음속에 빈 공간을 만들 깊게 심호흡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그 화살이 사실은 상대가 아닌 나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을. 상대의 어투, 표정, 행동, 말속에 있는 조사 하나하나까지 따져가면서 발작 버튼이 눌러진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애쓰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왜 나를 발작하게 만들었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잠시 멈춤과 심호흡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며 바라본다.


다시 딸아이의 말을 들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대답해 본다,


"그러게... 수영 안 가는 날이니까 엄마도 집에서 좀 놀아야겠다~"


책장에 꽂혀만 있던 <도덕경>이 읽고 싶어 졌다. 그 말은 지금 내 마음이 도덕경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도덕경, 제2장>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
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
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
악기소리와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
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따라서 성인은 무위(無為)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합니다.

모든 일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성인(聖人)이 되려 하기에 성인(聖人)이 존재한다는 것을 불혹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같다. 모든 것의 양면성을 알아차리고 그러함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삶이 아닐까.


발작 버튼 좀 눌러지면 어떤가,

이토록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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