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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미안해.

ep.07

by 유자씨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 몰라서 미안해.
엄마가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엄마가 다 미안해.



엄마는 무엇이 그리도 매번 자식에게 미안하기만 한지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엄마의 미안함이 나에게는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듯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미안함으로 대할 때 어린 나에게 사랑은 미안함이었다.


마치 내 존재가 엄마에게 자꾸만 미안함을 만드는 것 같아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이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를 알던 이도, 나를 사랑하던 이도 내가 떠났다고 슬퍼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 "죽으면 없어질 몸,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겠지."라는 말들을 엄마의 입장에서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음을 들을 때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질 듯 불안하고 슬퍼졌다. 그러나 엄마는 그저 죽음이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임을, 때때로 죽음을 친구처럼 여기며 자신의 힘든 상황을 위안했던 것이었을 이제 와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자책감에 빠질 때 관처럼 나오는 말, "엄마가 미안해." 이 말을 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내가 엄마가 된 것이 미안한 것인지, 정말 미안해할 만큼 내가 무슨 큰 잘 못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외면한 채 자신조차 속려는 것인지.


아이가 아픈 것도, 아이가 또래보다 너무 큰 것도 마치 나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되어 조그마한 자극에도 발작하는 내 모습이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려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요동치는 내 마음의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지고는 했다.


온전히 나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와 24시간을 함께할 때 정작 지치고 힘들었던 나의 몸과 마음은 보살피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예민해졌고 아이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과 다른 행동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나쁜 엄마야.'라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했다. 잠든 아기의 손과 볼을 만지작 거리며 눈울을 붉히 속삭였다.


"엄마가 다 미안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들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미련과 후회, 자책감이 서로 뒤엉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고는 한다.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들을 허망하게 보내버린 것만 같아서. 그 순간에는 영원처럼 길었던 힘듦과 고됨이, 돌이켜보니 찰나처럼 지나가버린 것만 같아서.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다시 돌아간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후회와 미련이 생긴다. 따금 우울의 늪에 빠질 때면 행복하고 눈부셨던 순간들을 생각하기보다, 자책과 후회만 담긴 기억들을 꺼내어 나를 괴롭힌다.


어쩌면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는 다 좋아질 거야.'라는 해피엔딩의 환상을 바라며 버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걱정도 고민도 고통도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그런 순간을 바라보며 버티기만 했던 것이다.


인정하고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글을 쓰는 행위는 내가 회피하고 외면했던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주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마주하기 힘들었던 감정이 바로 죄책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치심이었다. 나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죄책감은 내가 한 일에 관한 것이라면, 수치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죄책감은 내가 한 일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사과를 하면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감'에 관한 문제이기에 사과를 해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무력감과 소극적인 기분이 게 한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바닥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애써 감추고 노력해서 괜찮은 사람인척 했던 내가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나라는 사람으로 헐벗은 채 온전히 서 있어야 했다.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곳곳에 생겨있었던 구멍이 속수무책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역할이 엄마였다.


미안함을 느껴야 할 상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를 돌봐주지 않고 외면하고 자책하고 아픈 곳을 돌봐주지 않아 덧나게 만든 장본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그 사랑을 해석하는 몫은 개개인에 달려있다. 다만 나의 아이가 그 사랑을 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튼튼하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주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뿌리가 되어 자신의 나무에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나의 아이들이 이 세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나무로 자라나 어여쁘고 싱그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


사랑을 미안함으로 둔갑시키지 않기.

내 안의 수치심을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마주하기.


습관적 "미안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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