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9
그게 무엇이든,
분명한 건 희극도 비극도 동전의 양면 같아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는 한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상황이 있다. 우아한 백조도 물아래에서는 힘차게 파닥거리는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 녹초가 된 몸뚱이를 끌고 버스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던 그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가 발끝까지 퍼져 발가락 마디마디의 감각이 없어질 때쯤 집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대비되는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나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전기장판 위를 덮은 극세사 이불 아래로 발을 쑥 집어넣고 온몸의 긴장을 녹였다. 내 다리 위에 올려지는 귤 한소쿠리와 일일연속극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났음에 안도하고는 했다.
지치고 힘들어도 나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과 진배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세상 어디에도 나의 안식처가 없는 것 같은 비참함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마치 행복과 불행이 하나의 덩어리인 것처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상대방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하나하나가 나의 감각센서에 와닿는다. 마치 내가 명탐정이라도 된 듯 단서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 나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고는 한다.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것처럼 상대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내뱉은 말들은 모두 거울처럼 나를 비추어 되려 스스로를 자책하게 한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주면 그것이 진심인지 호기심인지 경계한다.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은 불편하게 느껴져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한다. 사실 그 불편함 들은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억눌러왔던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였음에도. 그렇게 날을 세워 세상을 바라보면 결국 상처를 입게 되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수많은 비극들이 내 안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의 외면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 좋은 사람인척 그럴듯하게 희극처럼 포장한다.
결국 비극을 앞세우는 인생을 사는 것도, 희극을 앞세우는 인생을 사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일 뿐이다. 비극과 희극 모두 그저 나의 생에서 맞이할 수 있는 옵션일 뿐이다.
거창해지지 말자.
불안할수록 코앞에 놓여있는 나의 비극들을 희극으로 바라볼 수 있게 나 자신을 따뜻함으로 보살펴주자.
모든 정답은 이미 내 안에 들어있다.
비극도 희극도 내가 선택하기에 달려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