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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지 않을까.

ep.02

by 유자씨




"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

항상 엄마옆에 내가 있을게.

그러니까 아프지 마... "


어버이날이었다. 매일 진통제로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엄마에게 초등학생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과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뿐이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은 나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엄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살아갈 이유도 없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켜야 할 명분이었으며, 나의 세상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사랑으로써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했. 당신의 사랑의 증거물인 내가 여기 이렇게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으니 부디 나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사랑은 이렇게나 아프고 불안정한 것인데. 도대체 프지 않은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장기출장을 떠난 남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와 헤어지는 게 슬퍼 기차역에서 한참 울던 딸아이의 눈가에 빨갛게 눈물이 고여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시무룩해 있던 딸아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


그 순간 린 내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었던 아프고도 불안한 사랑이 가슴속에서 시리게 되새김질되었다. 딸아이를 꼭 안아주며 "엄마도 우리 딸 많이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나는 딸아이를 마치 어린 시절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불안하고 아팠던 나를 바라보듯 안쓰럽고 슬프기만 했다. 혹여 이 아이도 나처럼 사랑이 아프고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불안함과 고통스러움을 힘겹게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노래가사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 아닐까.'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지 않을까.'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넓어서 아프고 시리기도,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도, 따뜻하고 행복하기도 한 우리의 모든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닐까.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이 불안하고 고통스럽다고 하여 그것을 과연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딸아이의 불안함과 슬픔이 사랑이라는 말로 튀어나온 것 또한 사랑의 힘이 그 모든 감정들을 아우를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나는 사랑 안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니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의 또 다른 변주곡일 것이다. 집착과 강박,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불안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를 안심시키고는 한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은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발견할 수 있다. 불안정한 한 인간이 사랑 속에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실한 사랑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나'라는 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 속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사랑하기 딱 좋은 온도.

36.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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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