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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할 때 더 불안하다면

ep.03

by 유자씨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제자리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잘 못 내디딘 한 걸음이 늪속으로 빠져버려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버릴 때가 있다.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낮은 물에서도 빠져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치지만, 몸에 힘을 줄수록 더욱더 숨이 차오른다. 은 이토록 모호한 모순투성이임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광대처럼 힘을 내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내디뎌보지만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땅으로 곤두박질친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아찔해한다.


유년시절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중에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했던 나는(어쩌면 부정적 감정들에 휩싸여 긍정적 감정을 깊이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행복하고 즐거운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낄 때마다 이상한 불편감이 들고는 했다.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 것 같다거나, 찰나의 이 행복이 곧 엄청나게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 같 불안감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물론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불편감과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와 '약간'의 기준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함정이 존재한다. 얼마만큼의 불편감과 약간의 스트레스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란 말인가. 기계처럼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고 편리할까.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존재라는 점에서 기계와 다름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너무 행복하고 감사함과 동시에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다. 내가 지키고 보살펴줘야 할 이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고서.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이 순수하고도 고결한 생명체인 너를 품에 안고서 나는 행복과 불안이라는 양극단의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을 상쇄시키는 최악의 불안한 상황을 떠올리고는 했다. 오히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더 나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했다. 그렇게 양극단을 오르내리며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오르내리는 파장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은 불안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행복이 높게 느껴지는 만큼 불안이라는 감정도 저울의 양쪽 끝에 달려있는 추처럼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다. 반대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높게 느껴질 때 반대편 저울의 끝에는 행복이 추처럼 매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행복할 때마다 불안했던 나는 그 감정을 깊이 경험하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을 잘못된 것이라 치부했다.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스마트폰에 몰입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결국 행복과 기쁨도 무뎌지게 된다. 그때 나는 비로소 중간지점을 찾아갔다 생각하며 안도하고는 했다. 그러나 진정한 평안함은 너무 행복할 때 불안해하는 나의 감정도 깊이 경험하고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다. 일시적 즐거움이 마음의 불안함을 없애주지 않는다. 마치 우는 아이에게 달달한 사탕을 입에 물려 입막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행복은 저울의 반대편 양쪽 끝에 매달려있는 불안함도 깊게 경험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것임을. 지금도 이따금 너무 행복할 때 불안함이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저울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안한 상황이 지속될 때면 반대편에 매달려 있는 행복을 찾아 미소 지어본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어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나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음에 감사하려 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정 실내온도

행복의 온도 24~26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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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