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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y 23. 2024

대만야시장 유랑기#2

ep.10



언어중심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은 정말이지 열정적이고 따뜻한 분이셨다. 30대 중반의 여자분이셨는데, 아담한 체구에 눈매가 크고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해주셨다. 상냥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덕분에 우리 반 수업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했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대만문화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곧장 교외 체험학습을 통해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셨다.


그 첫 번째가 야시장 투어였다. 스린야시장에서의 아찔한 첫 경험을 뒤로하고 우리의 두 번째 투어는 대만의 유명한 용산사(龍山寺)에 위치한 화시지에 야시장(華西街 夜市)이었다.  화시지에 야시장은 뱀이나 자라등의 보양식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단순히 뱀이 있는지, 그 뱀들을 잡아서 요리를 해 먹는지 궁금해서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과 함께 화시지에 야시장으로 향했다. 처음 갔던 스린야시장과는 느낌이 달랐다. 스린야시장은 음식냄새와 외국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면, 화시지에 야시장은 입구부터 조금은 조용한 분위기에 현지인들이 더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뱀이 있다고 들어서 그런지 뭔가 차갑고 냉소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곳곳에 한약재들도 많이 보였고 발마사지샵도 곳곳에 많았다. 그야말로 몸보신이 주제인 야시장이었다. 사실 대만에 있으면서 다녀본 야시장 중에 나에게 가장 독보적인 인상을 남긴 야시장이긴 했다.


뱀들이 가득한 야시장의 길목에서 풍기비릿한 냄새와 한약재가 섞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간판의 글자들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꼭 귓가에 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스르륵, 슥슥'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뱀을 보다니. 그것도 먹기 위해서.


선생님은 우리를 흰색바탕에 커다란 빨간색 글씨가 쓰인 간 가게로 안내했다. 구에는 뱀들이 투명한 유리에 철창처럼 쇠로 되어있는 케이지안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둥근 식탁에 작은 의자가 여러 개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메뉴판을 들고 오시는 사장님은 묘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선생님은 대표메뉴 하나만 주문해서 그냥 구경만 하자고 하셨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세트메뉴 하나만 주문해서 맛보고 싶은 사람만 맛보기로 했다. 잠시 후 쟁반 같은 곳에 맑은 탕 한 그릇과 소주잔에 담긴 빨간색 액체, 그리고 다섯 개의 작은 유리잔에 각각 다른 색깔의 액체가 담겨 나왔다.





이미지출처:구글



뱀고기 세트(蛇肉套餐)라는 이름의 이 메뉴는 대만달러로 250원, 한화로 약 1만 원 정도의 가격이다. 배를 채우는 용도가 아닌 몸보신용이라 생각했을 때 1만 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인 듯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계탕이랑 인삼주를 함께 마시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사장님께서 설명해 주신 세트 구성은 이러했다. 먼저 가운데 맑은 탕은 뱀고기가 들어있는 탕이다. 오른쪽 편 소주잔에 담겨있는 피색 액체는 뱀의 쓸개로 만든 술이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작은 잔들속 액체들은 인삼, 뱀의 담낭, 뱀독, 뱀생식기로 담근 이었다. 탕 옆에 있는 작은 종지에는 오메가 3처럼 보이는 영양제 두 알이 있는데 뱀기름으로 만든 캡슐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자신이 설명할 때마다 우리의 찡그린 얼굴과 괴성이 재밌게 느껴지셨는지 신이 나서 계속 설명해 주셨다. 가게에 진열된 유리병의 내용물들도 하나하나 소개해주셨다. 이것은 몇 년이 지난 뱀생식기로 담근 술이고, 이것은 몇십 년이 지난 뱀독으로 만든 술이라고 아주 귀한 것이라고 하셨다.


설명을 다 듣고 가게를 나오는 길에 선생님은 자신도 대만사람이지만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사실 화시지에 야시장은 뱀이나 자라등의 보양식 말고도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맛집 식당들이 모여있다고 했다. 뱀고기로 배를 채우지 못한 우리는 야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끼니를 해결했다.





사진출처: 구글




그 당시 한국에서 내가 생각했던 밤문화는 음주가무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만에 지내면서 곳곳의 크고 작은 야시장들을 발견할 때마다 깊숙이 대만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특색이 다채롭게 섞여있는 특유의 대만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큰 야시장들을 관광 삼아 둘러보러 다녔다면, 대만에서 생활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부터는 가까운 곳의 야시장을 밤마실하듯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대만대학교의 맞은편에는 공관야시장이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밤이 되면 길거리에 상점들이 하나둘 불을 켠다. 그리고 숯불에 구워지는 각종 꼬치들과 소시지 냄새와 지파이를 사 먹으려고 길게 줄 서있는 모습들, 버블티의 천국답게 각종 음료와 버블티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공관역에서 한정거장만 지나면 국립사범대학교가 나온다. 사범대에도 야시장이 있는데 이곳을 가장 사랑했다.


사대야시장(師大夜市)에는 내가 애정하는 식당과 디저트가게, 커피숍이 분포되어 있었다. 낮에는 커피숍이었다가 밤이 되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bar) 같은 분위기로 변신하는 곳이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날이 좋으면 좋은 데로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이었다. 사대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은 이곳이 아지트가 되어 한편에 자리를 잡고 포커를 치거나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다.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동생들과 자주 갔던 1인훠궈집도 사대야시장에 있었다. 한국인답게 파와 마늘 간장을 넣어 국물을 진하게 제조한 다음 고기와 야채들을 먹고 마지막엔 달걀죽과 왕자면(王子麵)-얇고 간이 되어있는 과자 같은 면-을  넣어 먹으면 한 끼만 먹어도 든든했다.


자주 가던 훠궈집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간쯤 인도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인도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먹은 인도음식이 그리워 한국에서도 여러 곳을 방문해 보았지만 그곳만큼 맛있는 집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야시장 한쪽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골목에는 브라우니 맛집 카페가 있다. 그곳의 브라우니는 정말 평생 내가 살면서 먹어본 브라우니 중에 최고였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나에게 선물해 주듯 그곳에 가서 먹는 브라우니 한입이 아직도 혀끝에 달콤하게 남아있다.


여행이 아닌 타국에서의 생활이 주는 매력은 아마도 그 나라의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식당 말고, 실제 대만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함께 스며들 수 있는 곳이 더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골목들이 오히려 진짜 대만같이 느껴지고는 했다. 유명하고 큰 야시장도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자주 다니며 대만생활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던 나만의 아지트 같던 사대 야시장 속 그곳들이 아직도 눈을 감으면 앞에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사진첩을 찾아 발견해낸 '그' 브라우니/ 사대 야시장 뒷쪽 조용한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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