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 (실습편)
기획자에게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문장을 주워 담는 행위라고 본다. 서점에서 제목에 이끌려 책을 구매해 처음부터 읽어나가다 보면, 작가의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세상이 강이고 바다라면, 작가는 그 위에 배를 띄워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노젓기를 눈의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의식에 그들의 배가 정착하게 된다. 배가 정착을 하면 마음에 울리는 문장을 여러 가지 떨어트리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기획자는 떨어트린 문장을 주워 담는다. 문장을 주워 담는 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문장을 수집하고 기획자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게임에서 몹을 사냥하고 떨어지는 아이템을 주워 담는 것과 비유할 수 있다. 두꺼운 책을 차근차근 읽어 나가다 보면 독자가 가진 생각과 기획자의 생각이 만나는 지점이 온다. 그 지점에서 기획자는 필요한 아이템을 수집하고 장착한다. 기획자는 문장을 보고 기록하며 생각을 한다.
작가와 공감대를 형성했을 때 문장을
주워담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써본다
23년 11월 7일 이연 작가의 '모든 멋진 일에는두려움이 따른다'를 135p를 읽고 문장을 주워 담았다.
"우리 안에 사랑이 많다는 것 그림은 내게 사랑을 알려줬을 뿐 내 사랑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생각을 하면 무엇이 좋을까? 기획에서의 방향성, 철학이 만들어진다. 기획에서 트렌드를 쫓아만 가는 것은 창작보다 모방에 가깝다.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듯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고유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창작이다. 작가가 떨어트린 문장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예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다양한 생각들을 마주하다 보면 기획자는 고유한 철학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 철학은 기획자의 탄탄한 무기가 되어 브랜드의 이야기와 연결 짓을 수 있게 된다. 브랜드의 존속 목적은 사회에 가치를 전하면서 영리를 취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기획자의 ‘철학’을 만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연의 문장을 주워 담고 생각했다. 일은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일에만 몰입하고 있다는 건 위험의 신호이다. 한 가지를 집중해서 잘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질투와 시샘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 삶에 있어 뒤 돌아 보면 일만큼 중요한 것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에도 신경쓰기로 마음 먹었다. 일을 적당히 잘해내자.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나씩 돌보자.
철학은 또 기획자가 풍기는 색깔, 냄새로 비유될 수 있다. ‘나는 어떤 색깔로 비추어지기를 원하고 있나?’, ‘어떤 냄새로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시키길 바라는가?’ 철학을 가진 기획자는 본인의 아카이브에 저장한 색깔과 냄새를 브랜드에게 입힐 수 있다. 많이 읽을수록 아카이브에 저장되어 있는 아이템은 풍성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인식 개선을 이야기해야 할 때, 나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카이브를 뒤져본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이뤄지는 차별들과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이다.
읽는다는 행위 끝 편에서 만들어지는 기획자의 철학. 철학으로 만들어 내는 스토리가 공감대를 형성한다. 포장지는 화려하지만, 정작 안에 내용물이 부실한 봉지과자는 사람들에게 꾸준한 선택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획자는 포장지 속 내용물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기획자의 내용물이란 알맹이가 가득 찬 이야기이다. 고유한 이야기 없이 판촉을 하는 브랜드는 반짝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기획자는 창작자이다. 누군가 고민하기 어려운 가치와 철학을 고민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온갖 나의 경험과 생각이 재료로 쓰이게 된다. 기획을 하기 위해 어떤 재료를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