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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Dec 10. 2023

나약하다, 취약하다는 말이 꼭 나쁜 의미여야 하나?

기획자의 취약한 자아

나는 자신이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아’를 갖고 있다. 사람이 ‘취약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에게는 어딘가 단점이 많고, 약해 보인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사회에서 ‘취약하다’는 표현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사람들은 취약해 보이는 자에게 변해라며 질타하기까지 한다. 나처럼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변해라고 하는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가스라이팅이다. 취약한 내가 변할 수 없다면, 나는 ‘취약함’을 나의 자아인 것으로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취약한 자아를 한 번이라도 더 살펴 예쁘게 바라보고 가꿔보기로 마음먹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변동적인 상황에 멘탈이 심하게 무너지곤 했다. 내면 상태에 취약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취약하다’는 특성을 한 사람에게 나쁜 것이라고만 단정 지어야 할까? 나의 답변은 ‘아니다’이다. 나의 취약한 자아는 실패의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 상황에서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상황에서 나는 ‘실패한 나’의 존재를 거부하기보다 실패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 자아는 실패의 상황에서 내가 취약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진심으로 탐구하고 고치고자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래서 이 자아 덕분에 궁극적으로 나는 강해지고 있다.


나의 취약한 자아는 실패한 상황에서
실패의 존재를 거부하기 보다
실패를 진지하게 탐구하려 노력한다


일을 할때의 취약점

기획자의 업무에서 나의 취약점은 커뮤니케이션(소통)이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상대의 입장을 잘 고려하지 않고 나의 유리함만을 취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마찰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이때 취약한 자아는 나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광고주와 소통에서의 실패

2022년은 근래 업무적으로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시기였다. 공공기관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 매니저로 SNS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기관을 홍보하는 서포터즈를 모집해서 연간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기억하기론 당시 나는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매주 2-3개의 콘텐츠를 꾸준한 호흡으로 만들어 내고, 매달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야 했다. 콘텐츠 공장을 돌려 애써 결과물을 만들어 가면, 광고주는 어미나 조사 하나하나 까지 세세한 내용에 대한 수정 피드백을 주었고, 예산과 시간 내 진행하기 어려운 영상  편집 효과의 변경을 요구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 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도대체 광고 대행사 기획자는 무얼 만드는 사람일까?’, ‘그저 광고주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인가?’, ‘우리가 광고주를 설득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날 웅크려 있던 나의 스트레스는 결국 폭발하게 되었다. 그날은 모 기관의 장관이 미국의 고위 관료를 만나는 브이로그 영상 제작을 다급하게 마무리 지어야만 하는 날이었다(하루 만에 영상을 기획하고 편집을 마무리 짓는 일정). 광고주 담당자는 급박한 일정으로 마음이 초조했고, 아침, 점심, 저녁 종일 나에게 연락을 취했었다. 나는 그에게 ‘쪼임’을 받고 있었다.


일정을 서둘러 몇 시간 만에 영상을 만들었지만, 급조하여 만들어 낸 영상이 예쁘게 나올 리 없었다. 기관의 국장이 핸드폰으로 막 찍은 즉흥적인 영상을 짜집어 편집했고,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클립을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부족했기에 완성도가 높지 않은 초안을 광고주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카톡으로 빼곡히 수정 피드백을 받았다.



어딜 봐도 예능처럼 나올 수 없는 와우 포인트나 웃음포인트가 부족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광고주의 요청에는 재미없는 영상을 재미있어 보이게 만져 달라는 피드백이 주를 이뤘다. 순간 축구 선수 기성용의 어록이 떠올랐다 ‘니가 해 보던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화기가 울렸다. 광고주 담당자의 전화였다. 국장이나 내부 피드백이 더 있었는지 추가적인 수정 내용을 전화로 토해냈다. 그리고,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오늘 언제까지 완료될까요?” 질문을 던졌다. 그간 쌓였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나는 좋지 않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실패했다. “이걸 당장 마무리 지어라고 말씀하시면, 너무 무리한 요청 아닌가요?!”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주변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있었는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좋지 않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었다.


광고주는 나의 리액션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본인의 급한 감정에 꼬리를 살짝 내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고 거만한 마음이지만, 당시 나는 ‘내가 이겼어’라는 심리적 쾌감을 살짝 맛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화를 표출했는데도 내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기분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영상을 수정하는 내내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추가적인 수정으로 편집은 이삼일 동안 더 지속되었고, 그렇게 우당탕탕 기획이 일단락되었다.


상대에게 큰 소리 친 것에 쾌감을 느꼈던 부끄러운 시절의 이야기


나는 이 경험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좋지 않은 감정이 묻어 나왔기에 광고주 담당자와 영상 작업자에게 내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 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위태하고 다급하고 짜증나는  감정도 나에게 스며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들과 달라야만 했다. 일을 함에 있어 나의 역할은 하기 어려운 일을 되게하는 ‘컨트롤 타워’이기 때문이다. 한 사업에서 기획자를 통해 많은 일이 거쳐간다. 기획자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심부에 있다. 그렇기에 이 컨트롤 타워가 흔들린다면,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도 흔들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외부의 압력 파도가 바다에 홀로 떠있는 이 컨트롤 타워를 심하게 흔들더라도, 나는 평정심을 찾았어여만 했다.


기획자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심부에 있다.
기획자의 커뮤니케이션은 외부의 흔들리는 상황에서
내면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내가 실패하게 된 주요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취약한 자아는 ‘감정의 몰입’에서 실패 원인을 찾았다. 이 실패는 주변의 상황적 변화에 민감한 나의 성격이 특정 상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발생하게 된 일이다. 당시 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지나치게 몰입했다. 평소 같았으면 될 수 없는 일을, 되게 하려고 발버둥 쳤다. 일이 잘못되어 회사나 나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을까봐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했다. 부정적 상황에 너무 몰입하고 에너지를 쓰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에 써야 할 에너지는 부족했다. 그래서 내면에 응어리져있던 화가 분출되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 겪고 나서는 나는 ‘감정적으로 대처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구나’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성낸 다음 함께 하는 동료는 나를 불편해하거나 신뢰하지 않았다. 배를 흔들리게 하는 선장을 어느 누가 믿고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도움이 되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내 자신을 창피하고 두렵게 바라보았다. ‘너 이대로 독고다이 처럼 살아갈 거야?’


바라는 일하는 자아(이상)와 반대방향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나


일터에서 되었으면 하는 모습을 다시 만들어 가기 위해 영점 조절이 필요했다. ‘내 감정을 잘 다스려 보자’, ‘다정함을 잃지 않고 소통하자’ 마음속에 되뇌었다. 이때부터 한 가지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포기했고, 내 감정의 위치를 살피는 데 심히 공을 들였다. 극도록 행복하거나, 극도록 고통이 수반하는 상황 혹은 주변부 어딘가에 내 감정이 처해 있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상황과 상대의 감정에 대해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는 성향을 갖고 있기에, 내 감정의 위치를 알아차리는 데 큰 어려움은없었다.  내 감정이 양극 꼭짓점에 위치했을 때, 이전과는 달리 자신을 경계했다. 그리고 감정의 몰입에서 빠져나오려 시도했다. 고통의 상황에 처할 때, 잠시 일 밖의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퇴근하고 뭐 먹지?’, ‘공부방 책상은 어떻게 꾸미지?’이런 잡다한 생각들 말이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면, 좋지 않은 감정이 점진적으로 상쇄되었다.


고통의 상황에 처할 때,
잠시 일 밖의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좋지않은 감정이 사그라든다



내면을 컨트롤하는 과정에서 나는 ‘감정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감정이 나를 잡아먹지 않게 하도록, 경계 태세를 취할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상황이나 누군가의 말로 내가 ‘힘듦’에 쳐했을 때, 일에서 잠시 멀어지는 생각들을 한다. 감정은 찰나의 순간 나를 잠시 장악할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 나의 존재 자체를 정의할 순 없다.



나는 취약하지만, 약하지 않다. 오히려 취약해서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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