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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Nov 26. 2023

글쓰기가 두려웠던 기획자가 다시 펜을 잡게 된 계기

감사한 글방 '동료'와 용기 낸 '나' 자신

기획자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글 쓴다는 것은 무형의 생각들을 ‘형태’로 만들어 주는 ‘창조’의 행위라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생각이 산발적으로 떠오른다. 이것은 모두 형태를 만들기 위한 재료이다. 요리로 비유해 보겠다. 단 맛을 위해 첨가하는 설탕이 있을 것이고, 짠맛을 내기 위한 소금과 간장이 있고, 잡내를 잡아주는 맛술이 있다. 기획자는 ‘산발된 생각(다양한 맛)’, 재료를 뭉쳐 그릇에 정성스레 음식을 담아낸다.


글을 쓰는 과정은 왜 기획자에게 중요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되는 재료들을 보관만 하게 된다면, 재료는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 형태를 변화하게 된다.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기록이 없는 많은 생각들이 썩어 부패한다. 글을 쓰는 과정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는 과정이다. 썩기에 아까운 생각재료들을 통조림에 담아 숙성시켜 부패의 속도를 지연한다.


쓰게 된다면 아이디어는 음식으로 살아날 것이고, 누군가는 먹게 될 것이다. 초보 요리사 라면, 시작 단계에서 음식의 간과 맛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맛을 의식한다면, 읽는 사람의 평가가 두려워서 결국 식칼을 꺼내 들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든 써 내려가고 그것을 공개해 본다. 세상의 평가가 잔혹할 수 있다. 지금 써 내려가고 있는 이 글에도 댓글이 달릴 확률은 희박할 수 있다. 그래도 쓰고자 마음먹은 곳은 심지를 꼿꼿하게 지켜 세워 본다. 써내려 가다 보면, 필자가 갖고 있던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어느 순간 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획자의 오피스에서 시간은 쓰기의 연속된 과정으로 가득 차 있다. 사업 수주를 위해 쓰는 기획안, 수주 사업 운영을 위해 쓰는 운영계획안, 프로젝트 후 결과를 보고하는 결과보고서.

기획자의 쓰기가 가장 어려울 때는 시작 단계이다. 정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페이지는 비어 있다. 갑갑하고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쓰는 페이퍼에 대한 피드백도 신경이 쓰인다. 어떤 식으로 나의 아이디어가 공격당할지 걱정되고 막막하다.



쓰기의 마지막 단계는 공유하기다.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만든 요리를 세상에 드러내어 본다. “내 요리 어때요?”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백종원 레시피처럼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 내 글을 먹어준다. 그 사람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본다. 내 글을 먹는 한 손님은 ‘글이 맛있다’고 완밥 하고, 반대편 테이블의 손님은 음식이 짜다고 반을 남겼다. 상반되는 시각에서 다음 글쓰기와 기획에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독자의 피드백을 곰곰이 지켜보며 생각한다. 상반되는 고객 중에 나는 어떤 사람을 충족시키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었으면 하는가? 기획자에게 글쓰기는 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면, 그들과 연대하기 위한 글을 지속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 글 하나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다. ‘한 줄 광고 카피’, ‘전략 기획안’, ‘수필’ 등 세상과 연결되는 무수히 많은 쓰기의 종류가 있다.


쓰기가 일상화가 되어야 하는 기획자인 내가 어느 순간 쓰고 공개하기가 두려웠던 적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에 애써 써 내려간 아이디어가 거절을 당할 때,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 보이기가 싫었다.

그래서 애써 쓴 문장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쓰레기통이 '애쓴' 문장으로 가득 찼을 때, 나는 한껏 움츠러져 있었다. 그렇게 '나다움'이 사라져만 갔다. 오피스에서의 시간이 불행했다. 그때 나는 움츠러든 나를 잠깐이라도 일으켜 보이고 싶었다. 자신감을 찾고 싶었다.

'일에서 쓰는 게 두렵다면, 일이 아닌 나의 일상을 써보자!' 그런 다음, 내이야기를 무작정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 글을 브런치에 공개했다. 글방에도 나가 보았다. 적당히 열심히 쓴 글로 동료들과 함께 교류했다. 그리고 작은 '글'전시회도 열었다.

그렇게 내 글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중 어떤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비록 악플이 많았지만). 철장에 갇혀있던 내 문장은 많은 사람의 도움과 내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나의 '작은'용기 덕분에 밖으로 내보내질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writerturtle/9

조회수 8만 회를 기록했던 나의 일상 이야기


홍승은 작가의 불확실한 글쓰기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 거북이와 그의 강아지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낼 것인가? 나의 음식에서 어떤 맛과 냄새를 풍길 것인가? 어떤 사람이 내 글을 먹었으면 하는가? 글을 쓰면서 ‘오래 준비한 대답’을 찾아 나간다. 실패는 없다. 성숙한 글쓰기를 하게 되는 과정만이 기획자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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