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하늘, 수십만 개 점이 풍기는 향기들
호암미술관에서 김환기 작가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먼저 환기미술관을 찾았다.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예술적 공명을 한눈에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작품을 따라가다 보니, 초기 달 항아리 모티프부터 전면점화에 이르는 작가의 변천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달 항아리 수집은 김환기가 한국에서 백자의 절제된 미감에 깊이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양 예술로 향할 것 없이 요란한 선으로 애써 뽐내지도 않고 마치 선비의 기 백도 서려있는 듯한 절제미를 가지고 은은한 기품을 뿜어내는 조선 백자가 모더니즘 아닌가. 성북동에 살 때 백자를 참 많이 모았다는 작가님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을 보며 달래고, 달 항아리를 그림에 옮기며 애정을 드러내었다 싶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백자 모더니즘’이 서서히 자리를 잡은 건, 그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뉴욕에 머물며 로스코처럼 추상미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던 화가와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우리는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에 따라 영감과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강한 감정을 체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3층 전시장에서 전면점화 작품들을 마주하자 캔버스가 되는 면(cotton)의 grid 위에 수십만 개의 수묵과 같은 점을 찍고, 점을 가르는 선으로 생기는 면들의 질서, 조화 그 속에 작가의 심연이 담겨있는 듯했다. 마치 물멍을 하듯, 관람자를 깊이 끌어들이는 점들의 웅장함은 우주나 심해를 연상케 했다. 사실 필자는 예전에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정말 가능해?” 하고 의아해하면서도, 그렇게 깊은 예술적 울림에 수양적인 태도로 빠져드는 경험을 언젠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바로 이 김환기의 작품 앞에서, 그 말이 실감 나듯 묘한 전율이 밀려왔다. 이게 바로 로스코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느꼈던, 눈물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술관 한복판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체험을 했다.
김환기의 우주 [Universe]
김환기가 마치 칼 세이건의 보이저 호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들었다. 우주로 전송된 음악과 그림들처럼, 김환기의 전면점화 시리즈가 우주의 어딘가에 닿았다면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칼 세이건이 제시하는 바처럼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우주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류가 어떤 삶의 지론을 가져야 하는지를 저마다의 답을 찾게 만드는 시간이다. 칼 세이건이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의 존재가 미미하기에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우주’그리고 ‘심해’를 연상케 하는 그의 캔버스에는 국적이나 언어를 넘어서는 보편적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시작된 우주적 확장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바흐의 음악과 닮은 듯하여 몇 번의 검색 끝에 ‘이 음악이다’ 싶었던 ‘바흐의 오르간 소나타 4번’을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 감상했다. 묵직하고 차분한 선율이 김환기의 푸른 점들을 떠올리게 해 일상으로 바로 돌아가기에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날의 감동을 이어가기 위하여 ‘Universe’라는 작품의 판화 한 점을 집에 걸어두었다. 에디션 넘버는 가로로 뒤집으니 무한대를 뜻하는 숫자 ‘8’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보이저 호의 황금 레코드
2016년에 방문한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는 피카소가 아주 젊은 시절에 남긴 멀쩡한(?) 초창기 습작들이 많았다. ‘피카소’하면 떠올리는 큐비즘 작품들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천재’라 불리는 피카소조차 화풍을 끊임없이 바꾸고 다작(多作)을 쌓아 올렸기에 미술계의 거장으로 추앙받았다는 점이 떠오른다. 명성이 쌓이면 누구나 안정된 자리에 머물 법한데, 피카소는 오히려 계속해서 도전했다. 김환기도 비슷한 행보다. 한국에서 이미 알려진 작가였고, 홍익대 학장, 서울대 미대 교수로서 확고한 인정을 받고 있었음에도, 프랑스와 미국으로 건너가며 화풍과 예술 세계의 폭을 끊임없이 넓혀갔다. 미술계가 서로 밀어주고 띄워주며, 콜렉터들 사이에서 사고팔고를 반복해 작품 값과 작가의 명성을 높이는 구조를 갖는 시장 논리와 별개로, 다작과 화풍 변화라는 ‘대가(大家)들의 공식’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김환기도 마찬가지로, 고정된 틀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적인 화풍의 변화가 거장으로 가는 길을 닦는 셈이다.
김환기는 한국적 전통을 토대로 현대미술의 여백을 개척하고, 해외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기만의 예술 언어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달 항아리를 수집하던 시선에서 전면점화의 푸른 우주까지, 그리고 마크 로스코와의 교류에서 칼 세이건을 연상케 하는 우주적 상상에 이르기까지—그가 걸어간 길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내면과 스타일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간 흔적이다. 이미 홍익대 학장·서울대 미대 교수 등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렸음에도 계속 도전을 택한 그의 삶은 “우리는 언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하고, 누구와 어울리며, 어떤 변혁적 구간을 설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안주의 유혹을 떨쳐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무엇부터 시도할 수 있을까?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보여주는 우주적 스케일과 달 항아리의 절제미가 한데 어우러진 예술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환경과 관계가 주는 영향력을 돌아보고, 안주 대신 또 한 번의 도약을 고민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는가?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바흐 오르간 소나타 4번
https://music.youtube.com/watch?v=h3-rNMhIyuQ&si=tkmJt6i9wRAdsqBV
방문하면 좋을 공간: 환기미술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40길 63: https://naver.me/xucymz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