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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랑 Feb 10. 2022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면서도

밥벌이로서의_사교육 #14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직장에 거짓말을 한게 되었다. 토일월화는 목동에서 수업을 한다. 수목은 은평에서 수업을 한다. 금요일엔 시험지를 만든다. 입사의 전제가 겸업 금지였는데, 또 그러겠노라 하고 말았는데, 쉬는 날 학원 몰래 은평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돈벌이의 화신,같은 건 아니고 다만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원래 맡고 있던 학생들을 이번 겨울방학까지만 봐달라는 얘기를 듣고서 또 그러겠노라 하고 말았다. 결국 이리 되었다. 


 무슨 대단한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 그럴 리 없다. 그, 뭐랄까, 그리 안될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해서 그렇다. 너희들은 나를 만나면 바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바꿀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걸 기대한 적 없고, 이때까지 그랬던 적도 없다. 일개 강사가 어떤 학생의 삶의 궤적을 바꿨다면, 그건 좋아할 게 아니라 걱정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미련마저 없다면 굳이 이 짓을 왜 하겠는가. 당신들이 바뀔 거라는 믿음도 없이 떠든다면 그건 그냥 벽에다 대고 떠드는 거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미련한 건 지극히 유치한 이유에선데, 나는 내가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배역이란, 어느 성공한 사람의 고단했던 유년 시절에 스쳐지나간 조연 26 정도. 그러니 어른은 어린이들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네 인생에 나도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줘. 어른이란 조금 더 열심히 떼쓰는 외로운 존재. 그리 한심한 건 줄 알았다면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증오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리 지나버렸다. 나는 언제나 까닭 모를 사랑에 빠졌다가 이젠 속지 않겠다고 다시금 다짐하는 사람. 그런 마음을 누군가는 짝사랑이라고도 불렀다. 나는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건 외로워야 하는 일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나 끝내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리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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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다'는 중세 한국어에서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개의 의미가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누군가를 지극히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가 있었다. 그를 생각하며 힘껏 웃다가 그보다 더 많이 울 때가 있었다. 그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적이 있었다는 생각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많은 경우 착각이었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해하는 일이었다. 그 미련한 일을 끊임없이 실행했던 것은 사실 그 착각이란 게, 다시 말해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이, 내가 나를 멋진 사람이라 여길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길 바랐고, 기왕이면 나의 사랑은 비련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정말 달성되고 말았는데, 나는 첫사랑을 그 누구보다 멋지게 실패했다. 뭐,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패한 첫사랑에서 얼마나 나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살아가는 동안 사랑을 목적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 생에 몇 없이 진지하거나 골똘했던 시간은 모두 사랑을 생각할 때였다. 그렇다면 좋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깨달았을 리 없다. 사랑은 사랑이라서 언제나 의아했다. 언젠가는 외로운 일이었고 또 언젠가는 외로움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걸 모두 합쳐보니 결국 사랑이란 누군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를 열심히 생각하며 산다면, 끝끝내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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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내 첫사랑의 그를, 사실은 기억하고 있다. 다만 그의 어느 것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저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실패했고 그 실패 속에서 남은 사랑을 길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것이다. 


 그를 생각하는 일과 학생을 생각하는 일이 같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의 웃음을 사랑한다. 끝까지 나를 봐주는 그 눈빛을 사랑한다. 쉰소리를 해도 강의실을 뛰쳐나가지 않는 그 인내심을 사랑한다. 내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라치면 어느새 나는 그 관심에 목매고 있다. 


 직업적 사명감이라든가 스승의 마음 같은 헛소리는 하면 안되겠다. 그저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끝내 살아지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또 실패하고 그 실패 속에서 남은 사랑을 길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표정이 내 하루를 결정한다. 그 하루들이 모여 이렇게 되었다. 그들을 생각하며 나는 힘껏 울다가, 또 그보다 더 많이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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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모든 학생이 강의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는 나를 기다렸다. 선생님, 얘가 왜 파생어에요? 질문은 짧았다. 3초도 안 되는 그 질문을 하고자 나를 애써 기다렸다는 것이 대견하여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을 피했다. 짓궂은 줄 알면서도 그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이것은 접사, 떨어져서는 기능할 수 없는 거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어 다행이다. 딱 그만큼만 내 사랑은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냥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살아지고 있다. 



*아 진짜 내 생에 이렇게 바쁘게 산 적이 있었나 싶긴 한데요, 또 그 와중에 부지런하게 게으르기도 하답니다. 주말에 술 마시지 못하는 것이 억울해 보통은 수목 저녁에 왕창 붓습니다. 같이 부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애써 찾아 뵙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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