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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an 12. 2022

무등산서 만난 의재묘소, 춘설헌, 관풍대, 의재 미술관

3년 여전 빛고을 광주 무등산을 담았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꺼내왔다.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은 광주 무등산 양지바른 기슭에 누워있다.

무심사 오르는 길,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잠시 돌렸던 발걸음.


지난 12월 27일 무등산 원효사에 이어 곧 올리려 했던 무등산 넘어 다른 쪽 가을 풍경, 어쩌다 이제 날아왔다. 다음 편에선 증심사도 담아와야겠다.

문득, 11월 말 그 무등산 자락이 그립다.

가을은 저물어가고, 겨울은 아직 먼발치서 기웃거리고 있었던 단풍물든 그 풍경이!




낙엽 밟는 소리가 하 좋아, 걷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오른 길이다.

살며시 오가는 바람 소리는 귓가에 머물고,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 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사라진다.


의재 묘소


의재 허백련(1891~1977)은 전라도 광주에서 활동한 화가로, 정통 남종화를 계승했다. 선생은 자신이 문을 열어 운영해오던 농업고등학교가 문을 닫던 1977년 3월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 이곳 무등산 기슭에서 영면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은 더 여유롭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걸어보는 것이 얼마 만일까?

낙엽 밟는 소리가 '쿵치 따치', '사각사각' 흔들흔들 경쾌한 리듬으로 돌아온다.

숲길이 하도 조용하다 보니, 가끔 '부스럭 바스락' 거리던 내 발걸음 소리에 저 혼자 놀라, 빠른 쉼표를 딱 찍기도 한다.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붉은 단풍과 키 작은 초록나무의 조화로움, 그 사이로 낙엽 깔린 작은 산길이 구비 져 돈다.

마음속에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저절로 깃든다.


내려가던 길, 오른쪽으로 춘설헌이 있다.

크지 않은 평범한 단층집이다.

춘설원 안에선 두런두런 사람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새어 나온다.

내용을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산새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허백련 춘설헌


광주시 지정 기념물 제5호 춘설헌은 건축가이자 서예가인 남용 김용구 설계로 1956년에 지어졌다. 의재는 (1891~1977) 타계할 때까지 이곳에서 20년을 지냈다. 처음엔 본채만 있었으나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별채를 지어 연결했다. 의재는 이곳에서 남종화를 대표하는 많은 명작들을 그렸다.

의재는 이곳에서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생의 한가운데' 작가 루이제 린저, 부안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 등 국내외 인사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 말 당시 (구) 차공장인 춘설차 시음장은 창고처럼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등산 관풍대


관풍대는 오를 때, 오른쪽으로 가장 먼저 보인 건물이나, 현장 스케치 편의상 맨 나중에 올렸다.

의재 허백련 선생은 등산객들이 차를 마시고 쉬어갈 수 있도록 무등산 등산로 입구에 이 작은 집을 지었다.

당시 방문했을 때 사람 기척이 없어 보였고, 그냥 바라보며 지나쳐 의재미술관으로 향했다.

이 늦가을 지나고, 겨울도 왔다 가면,

새봄엔 활짝 열린 문으로 지나는 이들을 맞아 주려나!?


증심사 오르는 길

빛고을 광주 무등산 증심사 오르는 길,

왼쪽으로  의재 미술관이 있다.

의재 허백련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로

의재 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현대식 건물이다.


의재 작품과 무등산 조화를 건축물에 담아내, 2001년 10월 '한국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의재 미술관


앞서도 밝혔듯이, 의재 허백련은 1891년 진도에서 태어난 20세기 남종화의 대가(大家)다.

의재는 무등산 자락 춘설헌에 기거하면서 많은 명작을 완성했고, 시서화 동호인 모임인 ‘연진회’를 이끌어 예향의 도시 광주에 주춧돌이 됐다.


의제 미술관 밖 풍경  애니메이션


(毅齋)의 '의'는 '떳떳하다, ' '굳세다'라는 뜻이며, '재'는 흔히 집이나 호에 붙이는 글이다.

는 평생 무등산 계곡에 살면서 창작활동을 했다. 그는 청빈한 사상가, 실천적 계몽 가이기도 했다.

'하늘과 땅, 사람을 사랑하자'라는 삼애(三愛) 사상을 실천했다.

문인이나 남종화라는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오늘날에도 의재의 예술과 삶은 무등산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의재 미술관 안으로 스며드는 고즈넉한 늦가을 햇살


미술관 안으로 스며드는 은은한 가을빛이 신비롭다.

건물 구조가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싼다.

당시 미술관엔 찾는 사람도 없었고, 특별한 전시회도 열리지 않아서인지 내부가 썰렁했다.

그러나 건물 자체가 단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안과 밖을 이어주는 오묘한 자연의 빛과 건축물의 단순한 선들이 세련되고 조화로웠다.


의제 미술관 전시실 애니메이션


의재 / 의재와 게오르규

1974년 3월,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 부부가 춘설헌을 찾았다.

작가는 '난초는 동양인의 마음과 같다는데, 대하기 까다로운가'를 물었다.

의재는 '조용하고 깊이가 있다는 뜻'이며, '난을 선비정신'이라고 알려주었다.

난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고 이 환경이 맞지 않으면 죽고 만다. 그래서 '잠수함 속의 흰 토끼'는 난과 상통한다고 말했다.

 - '잠수함 속 흰 토끼'는 게오르규가 시인의 역할을 비유한 표현이다. 잠수함 속 산소량이 적어지면 토끼는 사람보다 먼저 죽는다, 즉 사회가 병들면 시인이 먼저 숨 쉬지 못하게 된다는 뜻 -


의재 미술관 건물도 훌륭하고, 의제 예술작품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돌아보면서 내내 아쉬움만 더했다. 미술관 곳곳이 텅 비어 있었고, 찾는 이도 없었다.(당시 11월 23일)

'개점휴업' 상태로 건물 내부엔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넓은 미술관 입구에서 안내를 도와준 친절한 직원이 한 분이 있었지만, 미술관 전체를 관리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이런 느낌은 들고나는 관람객들이 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의재 미술관을 나서서 무등산 증심사로 향한다.

문빈정사는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 왼쪽으로 있다. 우리는 이미 문빈정사에 들려 의재미술관으로 왔지만, 사찰 2곳을 함께 소개하고 싶어 다음 글에서 무등산 증심사 스케치에 앞서 문빈정사를 잠시 소개하고 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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