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구원투수를 가진 팀이 승리한다
테슬라에 올인해 달리던 시간은 길고도 피로했다.
폭등은 내 욕망을 자극했고, 폭락은 내 멘탈을 무너뜨렸다.
이 방식은 빠르게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을지 몰라도,
10년 넘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은 아니라는 걸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10월 말부터 포트폴리오를 전면 해체했다.
DCA(Dollar Cost Average)가 분할매수라면, 이번엔 분할매도로 모든 자산을 현금화했다.
퇴직연금 계좌를 이렇게 비워본 건 처음이었다.
종목 수익률 대신 매일 조금씩 쌓이는 이자만 보이는 계좌는 어색했다.
마치 화면은 그대로인데, 소리가 모두 꺼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스닥이 연일 빠졌다.
그때 처음으로 폭락의 순간에도 마음이 편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변화는 현금의 힘 때문이었다.
현금은 공백이 아니라 기회였다.
폭락장이 반갑다니,
손에 현금이 있으니 떨어질수록 마음이 안정됐다.
매번 폭락을 겪을 때면 늘 “지금 현금만 있었어도…”라는 후회가 따라왔지만,
이번엔 그 후회를 실제 행동으로 바꿀 수 있었다.
포트를 정리할 때 느꼈던 허전함이
폭락장에서 매수 타이밍을 잡아가며 단단하게 바뀌어 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정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라고 말하는 거구나.
현금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위험자산 비중을 50%로 낮추고,
나머지 50%는 현금과 채권혼합 ETF로 채웠다.
이제 내 계좌에도 위기 때 팀을 구해줄 구원투수가 생긴 셈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여태 이 단순한 원칙 하나를 실천하지 못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욕망이 늘 나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올인, 몰빵, FOMO…
늘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조급함이 현금을 들고 있을 여유를 빼앗았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욕망과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한 것이다.
수익을 조금 덜 내더라도, 현금을 보유함으로써 장기 투자의 리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현금을 보유한다는 건 단순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건 욕망에서 한 발 떨어져 자기 속도로 투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리듬을 가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밤마다 나스닥 장을 들여다보느라 잠을 설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제 내겐 텐버거 종목은 없지만, 내 멘탈을 지켜줄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