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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메마른 사막에서 브런치를 만나다

여행을 마치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by 은퇴설계자

이 연재는 겉으로는 아이들과의 여행 준비를 위한 기획이었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니 사실은 온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였습니다. 당장 유럽으로 떠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답답함에,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머리로 먼저 여행을 떠난 셈입니다.


지식이 일천한 과학사 파트는 미처 소화되지 못한 글을 남긴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반면, 미술사 파트는 대학 시절 교양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을 소환하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흐름을 짚어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더라도 과연 이토록 열심히 준비할 수 있을까요?


내심 아이들이 인문학적 소양, 특히 질문하는 법을 익히고 당연한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어떻게 그러한 과학사적 성취를 이룩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 하나를 꼽자면, 단연 '로제타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retire-planner/22

사실 로제타석은 이집트 문명 해독의 단초가 된 오래된 비석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며 영국과 프랑스가 이 비석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석 실물은 결국 영국이 차지했지만, 정작 이집트어 해독의 열쇠는 프랑스가 풀었다는 아이러니 하면서도 통쾌한 결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에게 통쾌한 승리를 거둔 숨겨진 천재 샹폴리옹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로부터 '영구임대' 형식으로나마 돌려받은 것이 새삼 우연은 아닌 듯싶습니다. 비록 프랑스가 수많은 약탈 문화재를 루브르에 보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지만, 적어도 문명의 가치와 맥락을 이해하는 나라이기에 의궤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런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알아가는 기쁨도 컸지만, 무엇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며 '브런치'라는 따뜻한 작가 커뮤니티를 알게 된 것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경험입니다.


한때 검색 노출에 매몰된 블로그 글쓰기에 지쳐 방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제게 브런치는 메마른 사막의 우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두서없는 저의 글을 '브런치북'이라는 깔끔한 형태로 다듬어주고, 매주 연재라는 수고로운 절차를 기꺼이 견뎌내게 해 준 고마운 공간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글 쓰는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은 것이야말로 2025년 한 해의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에 꾸준히 성원해 주신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은퇴설계자'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탐구하는 글들을 꾸준히 써보려 합니다.


더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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