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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pr 23. 2023

어느 주말






하나, 둘.

네가 풀고 온 셔츠 단추 개수를 세고 있다.


-앞섶을 풀어 헤치고 왔네.

내가 말하자, 너는 빙긋 웃는다.



"더워서."



그렇게 말하는 네 이마는 뽀송뽀송하다.

너는 셔츠 소매를 걷는다.


손목엔 메탈 시계.



우연찮게 내가 오늘 찬 시계와 같은 브랜드다.


나는 무심하게 걷어 올려진 셔츠와 네 손목과 손등의 힘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시계로 시선을 옮겨 차가운 '메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배 안 고파?"



차가운 메탈시계와 따뜻한 눈빛의 너.


"밥을 먹자."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선다.








"나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었는데 말야."

-응, 뭐?

"음……"

-뭔데.

"아, 아니다."

-아 뭐야.

"아냐아냐, 미안. 나도 말 꺼내놓고 안 하는거 젤 싫어하는데."



너는 웃음으로 무마할 작정인지, 한쪽 눈을 찡그려 주름을 만들면서 베시시 웃는다.


나는 더는 묻지 않고 못이기는 척 넘어간다.








하루종일 그가 묻지 않은 질문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했다.







"요즘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야?"

-누구? 나?

"응."

-그냥, 날씨가 좋잖아.

"적당히 해. 무리하지 말구."

-그러는 너야말로 운동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뭐 고강도 운동 좀 해도 되지."

-참나, 근데 난 왜 안 돼.



뾰루퉁해져 있는 나를 너는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못 말린다는 표정.



"그럼 같이 고강도 운동이나 하러 갈까."

-어딜?

"따라 와."

-싫어.

"장난이야. 그냥 산책이나 하러 가자."

-그래.


나는 신발끈을 묶는다.






호숫가를 거닐다보니 메타세콰이어 숲길이 펼쳐졌다.


나는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듯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걸음이 왜 이렇게 빨라?"

-빨라?

"너무 빨라."



나는 속도를 조금 늦춘다.


"지금도 빨라."

-지금도?

"걷는 거 보면 진짜 기자 같다니까."

-기자같은 게 뭔데(웃음).

"항상 바쁜 그런 거 있잖아.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나는 의식적으로 천천히 걷는다.

너는 그런 내 옆에서 이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다.



너무 느린데, 싶었지만 이내 느린 속도도 나쁘지 않네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풍경도 더 천천히 감상하며 걷는다.







카페에서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이가 초코 케이크를 먹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아이 아빠는 계속해서 

"어허, 손으로 그러지마!"

라고 말하기 바쁘고 아이는 아빠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작고 소중한 두번째 손가락으로 가차없이 초코 생크림을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넋이 나간듯 보고 있었다.




아이 입 주변이 초코크림 범벅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가 포크로 줄게에. 너는 아~만하고 있어."

-아~~~


얌전히 먹는가 싶던 아이는 또 콕콕 손으로 크림을 찍어 대더니 어느새 케이크를 아작(?)내고 말았다.


아이는 만족한듯 "다 먹었떠요~" 라고 외치며 베시시 웃었다.

초코크림이 입꼬리에 묻어 입을 한껏 찢어 웃는 것처럼 보였다. 바가지머리와 그 무해한 웃음은 환상의 콤비를 자랑했다. 


아이 아빠는 초토화된 케이크를 보며 얼이 빠진 듯 했다.


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후후히힣"하며 웃었다. 


저런 웃음을 더는 지을 수 없게 된 어른은 넋놓고 그저 바라본다.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웃음이구나, 생각하면서




가만-히 보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어버렸다.








집에 가는 길에 작은 홀 케이크 하나를 포장했다.







집에 돌아와 케이크를 한 조각 내어 포크로 얌전하게 떠 먹었다.



이제 어린 아이처럼 케이크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손가락으로 크림을 찍어먹는 일 따윈 절대 없다. 그저 얌전하고 정갈하게 한 입씩 한 입씩 먹을 뿐이다.



그새 해가 많이 길어졌네 -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핑크빛 노을과 아이의 웃음과 셔츠와 손목시계와 

그때 네가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 따위를 생각하면서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나는 천천히 케이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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