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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Sep 01. 2024

지나친 이상주의자

Feat. 영리한 현실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한 마디로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말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데, 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결핍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막상 이 욕망이 충족되면 잠시 행복한 상태에 이르렀다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권태’에 접어들어 다시 새로운 걸 욕망하게 되고 이 상태가 반복되는 식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피로를 느낀다는 쇼펜하우어.

장수를 ‘징계’라고 표현하는 그의 언어에서 그가 삶에 대해 지니고 있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쇼펜하우어는 어지간히 강퍅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언행은 불일치하고, 그의 삶은 모순투성이다.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 말하던 그는 베를린에 콜레라가 확산되자 베를린을 떠나 ‘살기 위해’ 도피했고,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에 의존했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지 못해서 발생하며 사교성은 지성과 반비례한다고까지 말했던 그가, 불행을 혼자 감당하려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만용은 없다고 역설한다. 가족은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므로 늙고 병들었을 때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친구뿐이라며 고통을 함께 짊어질 친구를 가지라고 한다.


다만 그는 제법 자기 객관화는 되는 편이라, 자신이 겁이 많고 정직하지 못하며 세속적이고도 모순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자존감이 낮았으며 인간에 대한 강한 불신, 나아가 사랑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가지게 됐다. 이는 17살 때 아버지가 자살로 숨을 거둔 후 가정에 무관심하며 방탕하게 사치와 유흥을 즐겼던 어머니로부터의 증오와 진정으로 사랑받지 못했던 원 경험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야말로 한 인간의 인생을 추락시키는 근원적 불행’이라 말하는 쇼펜하우어. 그가 ‘타인에게서 사랑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배우가 어제 앨범을 냈다. 그것도 정규집을. 그는 예전부터 가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저찌 하다보니 배우로서의 인생을 살게 됐고, 20년째 그 꿈을 간직만 하고 있었다. 깨작깨작하면서 작곡을 하기도 했지만 습작에 그쳤던 그가, 요즈음은 가수들도 몇년에 한 번씩 낸다는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물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기에 그는 이미 가수나 다름 없었지만, 아예 음반을 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100일간의 프로젝트성 앨범이긴 해도 이미 쌓여있는 내공이나 실력이 없었다면 100일 안에 8곡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었을 테다. 그것도 발라드, 힙합, 블루스, 시티팝 등 장르도 다양하다. 음반 이름은 정직하게 '조정석 1집'이라고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음반의 수록곡들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가 늘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점은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진지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봤다. 10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그 얼굴에서 묻어나는 어떤 느낌에 나는 문득 감탄하고 만다. 그래, 나는 이 사람의 이런 얼굴을 좋아했었지. 너무 겸손하고도 수줍은 이 모습. 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진짜 노력과 연습으로 켜켜이 쌓아둔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공격적이리만큼 몰입감 있고 다채롭기에 항상 수줍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편으로는 진정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과하리만큼 겸손할 수도 있었으리라.


수줍음과 겸손함, 이 두 가지를 가능케 하는 비대한 자신감. 이 두 가지 모습이 동시에 드러나는 순간은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다정하면서도 남자다운'과 같이 두 가지를 좀처럼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충되는 매력의 작용과 반작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던 걸까.


좋아하는 배우가 많이 없는데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인 박해일 역시 그런 매력이 있다. 그는 "이 사람은 내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거야"하는 무한한 무해함과 "아냐, 갑자기 돌변해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라는 야생성이 공존하는 눈빛을 가졌다. 아, 얼마나 매력적인가.




흥분해서 이야기가 갑자기 딴 길로 샜는데, 무튼 그가 100일 동안 작업실에서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로 엮은 영상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대사가 날아와서 꽂혔다.


"믿으면 이뤄진다니까!"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처음으로 쇼케이스에서 선보이는 조정석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의 오랜 친구 정상훈이 한 말이다. 그는 조정석이 '가수'라는 꿈을 얼마나 오래 간직했는지, 또 그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이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감탄처럼 뱉었던 것이다.


이상을 이상으로서 가두거나 숭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을 때 꿈으로만 간직하던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이 된다. 조정석이 이번 기회에 넷플릭스와 함께 이런 무모한 '100일 데뷔 프로젝트' 따위를 하지 않았다면, '가수'로서 직접 제작한 앨범을 내겠다는 그의 꿈은 무한 연기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 또 시간이 날지, 기회가 닿을지, 곡을 완성할 수 있을지 그 어느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떤 '강제성'을 연료삼아 작업을 마치고 이상을 쟁취한 그는 그런 의미에서 영리한 현실주의자다. 이상주의자처럼 꿈꾸되, 지극히 현실적일수록 그 꿈에 닿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쇼펜하우어로 돌아와서,

낙관적 허무주의자가 되느니 비관적 냉소주의자가 되길 택한 쇼펜하우어. 그의 어록에는 온통 염세주의적 색채가 짙게 물들어있다. 냉소주의자는 아주 특별히 높은 기준을 가진 이상주의자일 뿐이라고 했던가. 그는 삶에 대해 "환상 속에 갇힌 어린아이로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인생은 기만의 연속이며 기만당하지 않겠다는 태도 자체가 이미 삶의 속성에 반하는 인생에 대한 기만이라는 것이다. 결국 진리가 거짓이라면, 그 거짓된 세계 속에서 어쭙잖게 성숙하느니 진리를 뛰어넘는 ‘환상’에서 영원히 미성숙한 어린아이처럼 살겠다는 그의 고집. 그는 냉소주의자보다는 조금은 우울한, 지나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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