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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고백

by 이재이


갑자기 전화가 왔다.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뭐야, 지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벨은 정직하고도 끈질기게 울렸다. 기어코 내가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이.


그럼에도 난 그저 별 용건 없이 '그냥' 건 전화일 거라 생각하고 넘겨 버린다. 정말 중요한 일이면 다시 연락이 오겠지. 문자라도 남기겠지. 그냥 부재중 하나 띡 남기고 마는 전화는 다시 콜백하지 않는다. 그냥 무신경하게 넘겨버리는 편이 이롭다. 이러나저러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그러다 며칠 지나서 물어봤다. 아참, 전화했더라? 그냥 그렇게.

"참 빨리도 물어본다. 그냥 해봤다."

예상한 답변이었다. 밤늦게는 수면모드라 전화해 봤자 나 어차피 안 받어. 나는 이전에도 했던 말을 또 한 번 반복한다. 아마 다음은 없을 것이다.


또 전화가 왔다. 얘는 또 갑자기 왜? 역시나 뜬금없다. 이름이 뜨는 걸 보자마자 나는 안 받겠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벨은 끈질기게 울린다. 상대에게는 자동음성녹음의 익숙한 음성이 전달됐을 것이다. 전화는 어쩌면 몇 달 후 또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역시나 그때도 지금처럼 마지막 벨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기어코 받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나는 받지 않을 텐데 상대는 뭘 기다리는 걸까. 정작 내가 여보세요? 하고 받으면 끊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히 안 받을 걸 알면서 그냥 걸어보는 걸까. 나는 마치 없던 일처럼 슥 넘기고선 그저 할 일을 한다.


뜬금없이 온 카톡은 확인하지 않고 내버려 둔 지 오래되어 자동으로 삭제가 된 탓에 상대가 뭐라고 보냈는지 알 수가 없게 됐다. 뭐라고 보냈냐고 재차 묻기도 민망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몇 주 후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 동네를 산책하다 내 생각이 나서 연락해 본 거였다고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 그렇구나. 졸지에 상대를 무시한 꼴이 됐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 뭐,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내게 그랬듯 나도 뜬금없이 전화를 걸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난 절대 전화 따윈 걸지 않을 것이다. 다들 획책이라도 한 듯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그 어떤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도 내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할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버리고픈, 그런 충동. 그냥 벨소리를 몇 번 울리는 것만으로 상대의 하루를 난잡하게 어지럽히고픈 그런 충동.


누구든 받아라. 아니, 제발 받지 마. 아무도 받지 마라. 어차피 할 얘기도 없으니. 그런 양극단에 위치한 충돌하는 마음의 공존. 뜬금없이 전화를 걸고 맥없이 끊어버리고픈.


하지만 나는 절대, 절대 절대 전화를 걸지 않는다. 의미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일단 행동하고 나면 뭐든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나이는 지나쳐 왔다. 나는 최대한 소극적으로 굴면서 최소한의 변수만을 통제하는 식으로 귀찮음을 해소한다.






80년대 일본 시티팝을 듣는다. 40년 전 노래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너무 세련돼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너무 시원하다. 버블경제의 버블버블처럼 호황기의 몽롱하고 낭만적인 멜로디가 퐁퐁 팡팡 터진다. 안리의 'Last Summer Whisper'를 다시 찾아 듣는다. 미친 건가. 너무 좋다. 재지팩트의 '하루종일'도 jenevieve의 'Baby Powder'도 좋아하지만 역시 원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역시 드럼을 배워야겠어. 나는 시큰한 손목을 돌리며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멋대로 지어 부른다. 이를테면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제발 돌아오라는 내용의, 또는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린 게 없는데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결국 찾고야 말겠다는 가사의 노래를. 정말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대체 뭘 찾고 뭘 기다리는 건지. 하지만 나는 버릇처럼 노래를 흥얼거리고 이내 감정을 담아 절박하게 울부짖는다.


평소 즐겨 듣던 노래의 가사를 다시 곱씹어 본다. 이렇게 슬픈 노래였어? 그냥 생각 없이 흥얼거릴 때랑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멜로디가 밝아서 신나게 불렀는데 말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나는 별안간 그런 어구를 생각한다.






감정이란 게 애초에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한다. 그냥 일방적으로 전가되어 버리는 거 아닌가. 혹은 전염.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전가되어 또 한 명의 슬픈 사람을 만들어버리는 건 아닌가. 한 명 분량의 슬픔이 고스란히 두 명 분량으로 증식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니 끔찍하고도 조금은 무서워져서 나는 오늘도 내 감정을 그저 일기장에 쏟아낼 뿐이다.


오늘의 내 감정은 나중에 이 일기를 읽을 미래의 나에게 전가하도록 한다. 이것도 저것도 나니까 온전히 내가 내 감정을 책임지는 거니까, 이건 무고하다. 비겁하게 나는 결백을 주장한다. 무고를 입증하는 것도,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도 모두 미래의 나에게 떠넘겨버린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원망하겠지. 그러니 지금은 무고하다. 일기에 쓰는 건 적어도 무고한 고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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