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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이 좋아

by 이재이



온 몸에 알이 베인 뻐근한 느낌이 좋다. 엄밀히 말하면 그 느낌이 좋다기 보다는 '상태'가 좋은 것이다. 느낌이라 해봤자 어차피 '근육통'이니 그건 통증일 뿐일테지만, 그 상태를 좋아하다보니 그 통증마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포함한 신체활동, 소위 말해 몸쓰는 걸 좋아한다.


몸은 참 정직하다. 절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복잡할 땐 그저 몸을 움직이려 하는 것 같다.

온몸이 뻐근한 그 상태가 지나면, 근육이 붙게 된다.






"자, 무릎에 코가 닿을 때까지 쭉 내려가보세요."

선생님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저 하품하듯 말하지만, 몸이 굳어 있으면 그 자세가 안 된다.

"무릎을 교차해서 앉고 그 무릎과 무릎 사이에 턱을 끼우세요. 자, 쭈우욱."

아뇨 선생님, 잠깐만요. 아니 아니, 안 된다고요. 쭈우욱이 안 된다고요!!!

내 비루한 몸뚱이는 더 이상 아예 내려가지가 않는다. 억지로 내려가려 하면 아악, 하고 비명이 절로 나오고 만다. 근데 하루하루 조금씩 하다보면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무릎에 코가 닿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는 전율한다.


팔굽혀펴기를 1개도 채 못하고 부들부들 팔을 떨다가도 매일매일 꾸준히 그냥 내려가서 반만 올라가다 주저 앉을지언정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팔굽혀 펴기를 10개는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복근 운동 후에 무심코 웃다가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파서 홓호호홓 하고 조심스럽게 웃다가 에취, 하고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자마자 배를 부여잡는다. 와, 재채기 한 번 할때도 이렇게 배가 땡기는 구나 하고 놀란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내 배에 복근이라는 게 자리를 잡는다.






키가 크기 위해서는 성장통을 겪어야 하고, 근육이 생기기 위해서는 근육통이 따라오듯이 뭐든 '성장'을 위해서는 통증이 수반된다. 몸이 아프면 발전의 과정 속에 있다는 걸 아니까 견디기 쉬운데, 이게 마음의 문제가 되면 또 어렵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복잡할 때, 어지럽다 못해 아플 때, 이 마음 아픈 과정을 겪고나면 결국 성숙할 텐데 그때는 이상하게 그저 계속 아플 것만 같다. 성숙의 과정이란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굳은 살이라는 건 도무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 그저 살갗이 까지고 생채기가 나는 것처럼 고통만 심하게 느껴질 뿐이다. 기약없는 고통처럼 느껴지는 상태가 지속된다. 언제 괜찮아질지도, 괜찮아 질 수 있는 건지도 정말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몸을 써버린다. 근육이 찢기고 알이 베이는 고통을 느낀다. 마음의 고통을 가시화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몸을 단련한다. 근육통이 시작되면 그저 이 근육통이 사라질 때까지만 힘들어하자고 생각한다.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에 근육이 잡히면 내 마음에도 근육이 생겼다고 그냥 믿어버린다. 효과가 좋은지 정말 마음이 더이상 힘들지 않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근육통을 좋아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도, 마음의 근육통도 모두 나는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하, 그나저나 어제 하체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한 탓인지는 몰라도 계속 앉아서 글을 쓰니까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얼른 누워야겠다.(나는 진정 근육통을 즐기는 게 맞는 걸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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