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고 돌아온 후 나는 울었다. 슬프지도 않았는데 그냥 울었다. 몇 날 며칠을, 몇 번 울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너의 소식과 내 소식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네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이유를.
좋은 소식일 것 같았다.
너를 만나고 온 지 이주일 즈음 지났나. 우리는 서로 아무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네가 계속 이곳에 있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볼 수 있다면, 한 번만 더 보고 싶은 이 욕심스런 마음.
이번엔 내가 먼저 만나자고 말해봐야지. 그리고 축하한다고 전해줘야지(나는 이미 너의 시험 결과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었다. 합격이라는 묘한 확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또 한 번의 눈이 내린 어느 날이었다.
‘눈이 와’
‘그러게’
‘어디야’
어디냐고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똔 또디 돈돈 돈단단(믿기 힘들겠지만 아이폰 벨소리다) 똔 또디 돈돈…….
“여보세요.”
“어디야.”
전화를 받자, 내가 했던 질문을 똑같이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집.”
“나도.”
너도 집, 나도 집.
“잠깐 볼래?”
“지금?”
“응, 그냥 산책하자.”
우리 그냥 놀자, 라고 말했던 네가 그랬듯이, 최대한 담백하게 제안했다. 조금은 퉁명스럽게.
“그래. 옷 따뜻하게 입고 나와.”
“응. 너도.”
따뜻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으니 따뜻하게 입고 나가야지. 정말 산책을 할 거니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오랜만이야.”
나는 손을 흔들며 뻔뻔하게 말했다.
“참나, 오랜만은 무슨.”
너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이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를 보고 어이가 없어 하는 이 무해한 웃음. 답답하고 약간 짜증도 나는데, 미워할 수 없다는 이 웃음.
네가 아닌 그 누구도 이렇게 웃을 순 없겠지.
“저쪽으로 걸을까.”
나는 중학교 쪽으로 걸었다. 우리는 뭐라고 계속해서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트랙을 3바퀴나 돌았다. 몇 바퀴째지? 했더니 4바퀴째라고 하길래 멈춰서 근처 정자에 앉았다.
“뭐 하고 지냈어?”
네가 물었고, 나는 나의 실패와 고난과 역경과 고군분투의 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해서 전했다. 네가 부재하던 그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설명이, 단지 몇 문장이면 되었다.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시험 다 끝났어?”
“끝났지. 나, 합격했어.”
“오 진짜? 축하해. 왠지 합격했을 줄 알았어.”
너무 예상했던 일이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최대한 밝게 칭찬해주려 했는데, 그게 뜻처럼 잘 안 됐는지도 모르겠다. 너에게서 합격 소식을 들으면 눈물이 날 거 같았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정말 축하해. 될 줄 알았어. 그리고 정말 고생했어.
“고마워.”
“고생 많았어.”
“고마워.”
“그럼 이제 뭐하는데?”
“음, 일단 2월에 예비소집 갔다가 5월에 연수원 들어가기 전까진 쉬어.”
“그렇구나. 와 진짜 잘됐다.”
너는 따뜻하게 웃었다.
“안 추워?”
“약간 추워.”
“뭐 따뜻한 거 하나 마실까.”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시켜놓고 보니 ‘따뜻한 거 하나’ 마시자 해서 온 거 아니었나, 겨울에도 아이스만 마시는 우리의 취향은 변함이 없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너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생각 없이 웃고 싶어. 아무 의미 없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싶어. 아무것도 심각할 일 없는 그 안일함과 게으름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싶어.
내가 가장 바라왔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신에 최대한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려 애썼다. 너도 열심히 동조해 주었다.
조금도 진지해지지 말아야 했다. 대화의 깊이란 없어야 했다. 얕고 얕은 대화. 그냥 부서지는 대화. 소멸하는 대화. 침전물이란 없는, 서브 텍스트란 없는 그런 대화.
4시간 동안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쓸데없는 얘기들을 했다. 난무하는 쓰잘데기 없는 얘기들 속에서 나는 더없이 행복했고 뭉클했고 애틋했고 슬펐고, 그 모든 것들로 인해 다시 행복했다.
최대한 의미 없이 이 시간을 보내기. 그것이 내가 가장 바라고 그리워했던 순간이니까. 가장 의미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우리의 마지막을 채우기.
그건 너무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