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만남 후 이틀인가 삼 일쯤 지났나.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
“그냥 있어.”
스피커 폰으로 해놓고 통화를 하는데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문자가 휴대전화 화면에 언뜻 보였다. 내 마음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의식하지 않는 척을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근무지가 어디라고?”
“아직 몰라.”
“어, 아아 맞다. 나중에 배정받는댔지.”
“응. ”
나는 문자를 얼른 눌러보고 싶었다. 무슨 내용일지 뻔한 그 문자를. 그리고 너에게 드디어 합격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이제 가장 유명한 방송사의 언론인이라고.
그런데, 하지 않았다. 말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는 뭔가 알아차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이제 다음 주에 예비소집 가.”
너의 목소리가 약간 들떠있었다. 더불어 그 속에 조금의 두려움도 느낄 수 있었다.
“오, 드디어. 축하해. 동기들 다 만나겠네.”
“그렇겠지. 약간 떨린다.”
“기분 좋은 설렘이지. 이제 사무관님이네.”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사무관, 하. 20대를 고시에 다 바쳤네.”
그렇게 말하는 너의 목소리엔 이제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아쉬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결실이 있으니 다행이야. 유종의 미를 거두네.”
“유종의 미.”
너는 내 마지막 말들을 따라 했다.
“근데 좀 늦었네.”
뭐가 늦었다는 걸까. 행정고시 합격이? 아니면 나와의 만남이? 우리의 재회가?
여러 가지 질문이 앞다투어 머릿속을 비집고 나왔지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왠지 대답을 이미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슬퍼졌다. 그리고 눈물이 차오르기 전에 얼른 전화를 끊고 싶었다.
“이제 앞으로 또 바빠질 거야. 너 정신 없을걸.”
“…….”
“좋은 날만 있을 거야, 이제.”
“…….”
너는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어……너도, 너도.”
“응?”
“너도… 좋은 날만 있을 거야.”
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빠르게 전화를 끊지 않으면 울음이 터져 나오는 급박한 상황을 막아내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그래, 고마워. 나 끊어야겠다. 안녕.”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얼굴을 감싸며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리곤 엉엉 울었다. 숨을 헐떡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너를 응원해, 영원히. 네가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영원히, 영원히 너를.
모든 미완결의 이야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제대로 끝맺지 못한다면 어차피 내 기억이, 세월이 알아서 적절히 미화해 줄 것이다. 나는 그저 그렇게 막연하게나마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그 정도 생각하고 덮어두기로 했다.
인제 그만 울어야지. 아니다, 울 수 있을 때 마음껏 울어두자. 후회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거다. 오늘까진 실컷 울고 더는 울지 말자.
우리의 관계는 미완결이자 미해결 과제이고, 어느 정도 찜찜함을 남기고 있으니 이것은 필연적으로 미래 어느 시점에는 완벽히 미화되어 있으리라. 지금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언젠가’, ‘어느 날’이 반드시 도래하리라. 잊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너를 잊으리라. 결국은, 종국에는, 기어코 잊고 마리라.
그의 예비소집 일이었다. 내 첫 출근까지는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더 남아 있었지만, 나는 서둘러 KTX를 예매했다.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그와 반대로 마음은 무엇보다도 가벼웠다. 나는 무거운 몸뚱아리와 가벼운 마음을 동시에 KTX에 실었다.
역시나 10호차 7A.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는 나의 스물아홉 해의 시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자기들끼리 마구 뒤엉키면서 휘감기고 있었다.
잘 있어, 나는 또 간다. 위로, 위로, 위로.
피곤이 몰려왔다. 그런데 막상 자려니 또 잠이 오지 않아서 KTX 안에 달린 화면에서 재생되는 뉴스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도 이제 저런 화면 속에 담기겠지. 저 네모난 프레임 속에. 그런 생각을 하며 뉴스를 계속 시청했다. 기억에 남는 것 없는, 하나 같이 참 지겨운 뉴스들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대전에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이 들리고, 머지않아 하차를 위해 느려지는 차체의 속도감이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의미 없는 뉴스들이 나오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보고 있던 화면 속에서 그의 영상이 재생됐다. 익숙한 그의 뒷모습, 그의 걸음걸이, 여전한 제자리걸음. 제자리, 제자리, 제자리, 걸음, 걸음, 걸음, 걸음.
그런데 몇 번 제자리걸음을 걷는가 싶던 그가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조금 놀랐으나 반가운 마음으로 어, 하고 말하려는 찰나 그는 웃어 보였다. 나도 천천히 따라 웃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저 마주 보고 웃고 있었다. 가히 안일하고도 평화로운 대치 상황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았다. 그리곤 각자의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이쪽으로, 너는 저쪽으로. 각자의 길로.
한참을 걸었을까,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정갈한 여성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우리는 잠시 후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고객님께서는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도록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잠이 들었지,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곧이어 열차가 정차했다. 열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몸뚱아리가 놀랍도록 홀가분해졌음을 느꼈다.
나는 다시 서울의 인파 속으로 속도감 있게 섞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