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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Oct 23. 2024

붉은부리갈매기야

내가 이 바다를 다시 찾거든

부리로 내 눈동자를 찢어발긴 새

부드러운 총알처럼 입 안에 박힌 새

말을 잃고 시를 잊게 한 새


활강하는 네 아래 감히 두 눈 의연히 뜬 나에게

용서를 빌지 않은 강인한 소녀에게

더 큰 형벌을 다오


내가 이 바다를 다시 찾거든

해변에서 멱을 감으며 놀다가

희고도 통통한 네 가슴으로 예고 없이 날 밀어 눕히고

날렵한 꽁지깃으로 내 심장을 적당히 간지럽힌 다음

뼈만 엉성히 남을 때까지 내 발을 뜯어먹어


더는 걸을 수 없게 하여라

가까스로 죽음을 꿈꾸게 하여라

그런 다음


나처럼 의연히 날아가거라

나는 잊고 그 붉은부리로

탐스러운 여러 개의 심장을 끄집어 뜯어먹어라

뭇사람의 말과 시를 발라먹고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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