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 쉰 살을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늘의 명령을 안다는 뜻으로, 비로소 하늘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체성이 확립되는 불혹(不惑)의 나이 마흔을 지나 오십이 되면,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보편적 기준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보편적 기준이라 함은 ‘나’라는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개념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널리 공유하는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를 말하는 듯합니다.
또한 나이 60, 예순을 耳順(이순)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슨 말을 들어도 화내거나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며 많은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배려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연륜이 생긴다는 말과 동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새삼 충격받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한탄했고, 소설가 시몬 드 보봐르는 ‘노년만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도 없지만, 또한 노년만큼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그림동화 작가인 존 버닝햄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경로우대증을 받을 나이가 된 것이 그에게는 ‘충격적인 이정표’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삶이 돌려줘야 할 무엇이 되어 버린 것’처럼 생각됐다고 합니다.
작가 버닝햄이 엮은 ‘행복한 늙음에 관하여(내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라는 책을 읽다 보면 나이를 들어가는 행위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새로운 삶의 과정이며, 아름다운 것인지를 넌지시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나이 듦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이라고 알려줍니다.
나이 듦은 분명히 ‘해가 갈수록 크리스마스가 점점 더 싫어지는 것’이기도 하며, 일명 ‘안경 찾아 삼만리’이며 한 가지 운동밖에 못하는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후손 숫자가 친구 숫자를 추월하는 것, 젊은 애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하는 것, 점점 심술과 심통이 늘어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이 변하지만, 더 많은 것이 그대로 남는다’는 프랑스 속담이 노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상하게도 현재의 나이란 것은 항상 받아들일 만하며, 나이 들어 유일하게 줄어드는 것은 성생활뿐, 겉모습은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내적 모습이 주는 만족감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귀띔합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축복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영국 작가 헨리 오스틴 도브슨처럼 ‘시간은 머물러 있는 것, 흐르는 것은 우리인 것을’이라고 푸념할 수는 있어도, 셰익스피어가 희곡 ‘리처드 2세’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라고 탄식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전성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탄도 슬퍼도 말라서 변하는 건 겉모습일 뿐 인생은 언제나 전성기임을 각인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