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한 지난 어느 주말, 간만에 마누라상과 나란히 기차에 앉았다.
도쿄역에서 출발한 기차의 목적지는 이바라키현의 행정 수도인 미토시(水戸市)
처음 가보는 이곳으로의 여정은 열차가 이끄는 곳으로 가는 낭만의 여행길이 아니라 미술관 가는 길이다.
도쿄에서 왕복 4시간이니 미술관 가는 길 치고는 멀기도 하다.
ART TOWER MITO 혹은 미토 예술관이라 불리는 이곳에 가면 먼저 100미터 높이의 스테인리스 타워가 보이는데 전망대를 겸한 이 대형 조형물이 이곳을 상징항다. 미토 예술관은 콘서트홀과 극장 그리고 컨템로러리 미술관이 있는 대형 복합 문화 시설로 총괄 디렉터는 유명한 지휘자인 세이지 오자와 Seiji Ozawa 씨가 맡고 있다.
이렇게 주말을 헌납하며 산 넘고 물 건너 미술관을 찾은 이유는 우리 부부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이 집을 떠나 석 달 동안 이곳 미토 예술관에 전시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토록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작품을 탄생시킨 주인공인 Maria Farrar를 만나기 위해서다.
발걸음을 재촉해 전시실에 들어가 보니 우리 집 거실을 꽉 채우며 걸려있던 작품이 한순간에 눈에 들어왔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미술관의 흰 벽에 걸린 Mother and Child. 지난해 3월 우리 집에 자리를 잡은 그녀가 1년 만에 세상 구경에 나서 미토시의 미술관에 눈부시게 걸려있는 모습을보니 반가움과 뿌듯함이 함께 몰려왔다.
그렇게 그녀와의 조우를 즐기는 사이, 뜻밖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와 같이 이번 전시를 위해 자신의 소장품을 기꺼이 내어준 작품 컬렉터들이었는데 큐레이터 상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하고 각자 자신들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편의 점잖은 부부는 도쿄에서 오신 S 상 부부로 알고 보니 유명한 컬렉터이고, 오른편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덩치 큰 분은 홍콩에서 프리이빗 제트로 날라온 J 씨로 자신이 친애하는 작가도 만나보고 일본 여행도 할 겸 해서 이곳 미토까지 찾았다고 한다.
같은 작가를 존경하고 친애하는 사람들을 작가의 그림을 모아놓은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나니 반가움을 넘어 동질감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S 상 부부와는 도쿄에서 저녁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고 J 씨와는 홍콩에 오면 만나기로 기쁘게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전시 오프닝의 부대 행사로 진행된 Artist Talk에서 드디어 Maria Farra를 보게 되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파마를 한 짙은 검정 머리를 길게 늘어뜰인 마리아는 살짝 긴장한 듯 스피치를 이어갔는데 이야기의 내용은 자신이 경험한 여러 국가에서의 정착에 관한 것으로 특히 미술 공부를 시작한 아직은 소녀이던 시절에 일본에서 영국으로 건너갔을 때의 여러 어려움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어진 질문 시간, 나는 이번 전시 주제인 'care'에 착안해 질문을 해보았다.
"나는 그림이 주는 역할에 충실한 당신의 그림을 집에서 보며 많은 care를 받고 있습니다. 이점 감사합니다. 당신에게 그림을 창작한다는 행위는 당신 자신에게 care의 수단으로서 작용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care입니까?" 마리아의 응답은 의외였다.
"물론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care를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게 항상 care를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린다는 것은 때로 내게 사나운 짐승이 되어 다가옵니다. 나를 할퀴기도 하고 고통으로 몰아놓기도 하죠. 네 분명히 그림은 나에게 양면성이 있는 존재이지만 저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 즐길 줄 아는 내게 창작의 고통이란 것이 작가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고통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고통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Artist talk이 끝나고 드디어 Maria Farra를 만났다. 그림 받느라 2년, 작가 만나기를 2년 꼬박 4년을 기다렸다.
언제 보아도 스고이~가 연발이 되는 마리아의 작품 들.
이번 전시는 신작 없이 모두 컬렉터들의 협조로 이루어졌는데 언젠가는 그녀의 신작들이 멋진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순간을 기대해 본다.
전시명 : Thinking about Caring and Motherhood through Contemporary Art
When? Where? By Whom? For Whom? Why? How?
장소 : 이바라키현 미토 예술관(ART TOWER MITO)
기간 : 2월 18일~5월 7일
https://www.arttowermito.or.jp/english/gallery/lineup/article_5188.html
문화생활을 즐겼으니 이제 먹고 놀아볼 차례.
먹어본 지 10년도 넘은듯한 아구가 이곳 미토의 대표 음식이란다. 일본 말로는 안코우(あんこう)라고 해서 주로 나베로 먹는데 구글 리뷰를 중심으로 여러 곳의 식당을 검색해 보았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즈음. 미술관에서 만난 S 상 내외와 우연히 길가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이곳 식당을 추천받았다.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기에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미리 가서 이름을 적고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타나더니'원조 아구탕'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간판 앞에 50~60미터도 넘는 줄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유명한 곳은 나름 이유가 있기 마련.
음식은 만족스러웠다. 콩나물과 미더덕, 고춧가루와 야채가 잔뜩 들어가 냄비가 넘칠듯한 한국의 아구탕과는 딴판이지만 다시를 베이스로 낸 국물에 생선 냄새가 나는 진한 미소를 풀어 담백하고도 개운한 맛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어릴 적 방배동 골목의 아구찜 집들처럼 이름은 아구찜이지만 아구는 쪼금만~~~
마구로와 오징어 사시미를 곁들어서 먹는 미토의 대표 음식 나토도 맛났던 기억.
오늘 아침 마리아 파라의 인스타에 다시 반가운 사진이 올라왔다. 이번 전시를 열심히 서포트한 Ota Fine Arts의 큐레이터들과 함께한 사진으로 E 상은 마리아 파라의 총괄 담당이며 그녀와 연배로 사춘기를 일본에서 지내 둘 간의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또 S 상도 런던에서 미술 공부를 하여 마리와와 함께 통하는게 많다. 찰떡궁합의 미녀 3총사와 함께 걸린 작품들을 보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하나미 시즌에 미토시를 다시 한번 찾고싶은 기분이 생겨난다.
다시 만날때까지 집에서 그랬듯 석 달 동안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 부지런히 치유를 제공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