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만두, 만두 풍년

만두예찬

by 카타

"아빠는 어디에 돈 쓸 데가 안 아까워?"


아빠는 많이 먹어서 망한 놈은 없다며 먹는 데에 돈 쓰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아빠는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셨던 분이다. 돈이 아깝지 않은 대상이 '먹을 것'이라는 원초적인 답변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빠의 어린 시절을 간접경험하며 자란 나는 그 대답의 의미를 이해하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빠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대체로 그 주제는 '가난의 설움'이었다. 불에 탄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을 때 입 속에서 밥알이 살살 녹을 만큼 배가 고팠다는 이야기부터 학비가 없어 학교를 쉬고 군대를 가야 했던 이야기까지.


식구 수가 많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빠는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늘 우선순위에서 제외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게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에게만큼은 좋은 것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크셨을 것이다. 아빠에게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자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사치였다. 요즘 젊은 세대가 말하는 플렉스의 대상이 음식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 최고의 수혜자는 우리 가족이다.


그러나 이렇게 음식으로 플렉스 하기까지 녹록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다. 바로 엄마와 결혼하고 언니를 낳은 이후 몇 년간의 시간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터라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간. 사랑이란 감정을 크게 경험해본 적 없는 아빠에게 딸이라는 생명체는 세상의 다른 생명체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왔다. 아빠는 그 순간들을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던 시간'이라고 표현하셨다.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수입산 바나나 몇 개를 사들고 퇴근하는 뿌듯함, 제과점에 들러 딸아이 입에 들어갈 파운드케이크를 고를 때의 흐뭇함. 그러한 감정들은 첫딸인 언니가 아빠에게 준 최고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언니가 태어나고 이후 몇 년간의 시간들의 기억을 소중한 보따리 늘어놓듯 자주 꺼내놓으셨다. 그중에서도 퇴근 후 "우리 아기 오늘은 뭐 먹었어?" 종알종알 말을 시작한 언니에게 물으면 "만두 맛~있어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만두를 먹을 때마다 들어야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가족이 셋이었던 시간 속의 이야기이다.



텔레비전에서 유명한 만두집이 나올 때, 만두 광고가 나올 때, 만두를 먹으러 식당에 갈 때, 집에서 만두를 빚을 때, 모락모락 김이 오른 전통시장 만두를 살 때, 마트에서 냉동만두를 살까 말까 고민할 때도 아빠는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1번만 더 들으면 10,000번째일걸? 하며 아빠를 타박하곤 했다.


그렇게 수천번은 들었을 아빠와의 대화인데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막상 아빠가 떠나고 나니, 일상의 모든 것에서 아빠를 보고, 아빠와 했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아빠가 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해 본다. 생전의 아빠와 생후의 아빠는 다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는데..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야 할 텐데...


마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이 먹어서 망한 놈은 없다는 대답을 하는 아빠와 음식에 대한 추억이 많으니 마트에 있는 재료 하나하나가 아빠와의 기억을 소환했다. 마트에 있는 재료들로 음식을 해 먹을 일이 있을까? 이젠 맛있게 먹어주는 아빠도 없는데...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이젠 사 먹는 음식이 시시해졌다. 맛있는 걸 너무 많이 먹어본 탓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로 배달 주문을 하는데 특이한 습관이 생겼다. 늘 만두를 검색해 보는 것이다. 만두가 싫었던 적은 없었지만 일부러 찾던 음식도 아니었는데 만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만두는 꼭 먹어봐야겠고, 세상의 모든 만두가 궁금해졌다. 찌거나 굽거나 튀겨서 국에 넣어서 등등 조리 방법을 다양하게 해서 먹을 수 있고 먹기도 간편하다며 만두 칭찬도 자주 늘어놓는다. 갑자기 만두예찬론자가 된 듯하다.


만두를 보면 만두에 추억을 담은 아빠가 생각나고,

만두에 추억을 담은 아빠를 우리는 또 추억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만두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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