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가 최고라서 미안해.

나의 기억에는 없는 아빠의 추억을 추억하다.

by 카타


결혼 전 아빠는 아이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었다고 한다. 울고 떼쓰고 코 흘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다니는 엄마들의 마음이 온전히 이해되질 않았던 아빠는 자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며 무심한 청년이었다.


그런 아빠는 결혼 1년 후 첫 딸을 낳았다. 아빠의 첫 딸이자 나의 언니가 태어난 날은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생긴 특별한 날이다. 없는 살림에 결혼식도 겨우 올린 팍팍한 일상이었지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그렇게 자식이란 존재는 또 다른 세상을 아빠에게 선물했다.


첫 아이에게 느꼈던 특별한 감정, 그런 마음이 둘째인 나에게는 조금 덜해서였을까, 아빠는 늘 나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원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이며 키운 언니와 달리 나에게는 정신없이 바쁜 삶에 쫓겨 신경을 많이 못 써주었다며 미안해하셨다. 늘 넘치는 사랑을 주었던 아빠였어도 당신 스스로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최선이었나 보다.


아빠는 그 미안한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셨는데, 그중 하나는 언니에게 나를 잘 챙겨야 한다며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일이었다. 먹고 자는 것처럼 아빠의 하루 일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는 '늘, 언제나, 모든' 이야기가 '동생 잘 챙겨라'로 끝맺음을 하시는 듯했다. 기승전'동생 잘 챙겨라'. 그러나 언니는 이미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보호자였고, 좋은 것이 있으면 늘 나에게 양보해 주었다. 아빠는 누구보다 그 모습을 흐뭇해하시면서도 나에 대한 미안함은 쉽게 덜어지지 않으셨나 보다. 어릴 땐 '언니로서 동생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신이 최선을 다해 주었던 사랑을 사랑이 부족했던 동생에게 나눠주라는 속뜻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 사랑의 크고 작음의 기준은 아빠 몫이다.)


아빠는 늘 언니에게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당당한 아빠, 나에게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원죄 의식으로 한없이 다정한 아빠, 매번 내 마음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아빠였다.


그런 아빠도 언니에게 미안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코너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식재료 쇼핑을 했다. 이것저것 사볼까 하는 아빠, 먹을거리가 이미 충분하다고 만류하는 나. 장바구니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좋아하는 일상의 단면 중 하나였다.


마트에 들를 때마다 아빠는 늘 이유식 코너에서 언니가 아기였을 때 먹었던 미제 이유식을 한참을 들여다보신다. '언니가 많이 먹었던 이유식'이라며 우리의 기억에 없는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해외수입이 자유롭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아빠는 미제니까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유식을 구해서 먹였다며 배경을 열심히 설명하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접 만든 이유식이 건강에도 좋고 정성 있는 것이었을 텐데 그때는 무조건 미국 제품이 비싸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었다며 아쉬워하신다. 오히려 둘째인 나는 신경이 덜 쓰여 집에서 이런저런 식재료로 만들어 먹였는데 지나고 보니 언니가 피부가 약한 것이 이유기 때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 먹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아빠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평소 언니에게만은 늘 당당했던 아빠의 모습으로 추측해 볼 때, 아마도 언니에게 미안해하셨던 몇 가지 안 되는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너에게는 나의 정성과 노력을 다했노라 늘 당당했던 아버지가 언니의 이유식 이야기를 할 때는 옅은 미소를 띠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곤 하셨다.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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