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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10. 2023

연어는 분홍빛일까, 주홍빛일까.

[추억 한 그릇] 빛깔에 반하다, '연어, 연어, 연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늘 연어를 공략한다.


나는 연어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느끼한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을 선호하고, 회는 차갑고 쫄깃해야 하지만 패밀리레스토랑에서만큼은 평소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선호를 조절했다.


연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가지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색감 때문이었다. 채소답지 않은 색감의 가지를 맛없는 채소라고 오해했지만, 생선답지 않은 빛깔의 연어는 빛깔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자꾸만 만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연어는 주황색이라 해야 할지, 분홍색이라 해야 할지. 보통은 분홍빛 연어로 소개되지만 나는 주황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어적 표현으로는 '분홍빛 연어'가 '주황빛 연어'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처럼 느껴진다.)



이유답지 않은 이유로 연어를 즐겨 찾던 나와는 달리, 가족들은 연어를 즐겨 먹지 않았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모든 면이 나와 꼭 닮은 아빠도 연어에 대한 호감은 딱히 없어 보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성격이 무던한 언니는 느끼해서 맛에 적응하기 어렵다며  연어 앞에서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다. 






요리책을 신나게 탐독하는 생활이 시들해질 즈음, 해외 요리사이트에서 발견한 레시피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요리가 있다니.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궁금했다. 처음 들어보는 채소와 향신료가 가득한 레시피를 보면 어떤 맛일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 음식의 맛만큼 언어로 자주 표현되는 감각이 또 있을까 싶지만 얼마나 정확하게 그 맛을 묘사해 낼 수 있을까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레시피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대체재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그 레시피에서 원하는 맛을 최대한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새롭게 발견한 요리를 해 먹기 위해 레시피를 수첩에 곱게 옮겨 두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근처 마트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채소와 향신료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재료들을 공수할 수 있는 훌륭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딜과 래디쉬 등 다양한 향채와 갓 숙성시킨 연어 등 당시엔 쉽게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들이다. 돌아보면 나는 레시피 사냥을 하면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향채를 주문하려고 보니 기다렸던 연어를 한정된 수량만큼 판매한다고 공지가 올라왔다. 집에서 연어를 요리해 본 적이 없기에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궁금함이 생겼다.


"궁금한데 한번 주문해 보던지."

"몸에 좋으니까 조금씩 먹으면 되지, 뭐."

무던한 반응이지만 '연어에 대한 환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연어를 주문하고 싶은 나의 감정을 배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드디어 기다렸던 연어가 도착했다. 우리 가족이 한 번에 먹기엔 제법 넉넉한 양이다. 처음 식재료로 마주한 연어는 색감이 참 곱다. 자연의 색은 참 아름답다는 짧은 감상.


고운 빛깔의 연어를  얇게 썰어서 한입 먹어보니 그동안 먹었던 훈제연어와는 전혀 다르게 맛있었다. 나는 몇 점을 더 저며서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오늘 도착한 연어거든. 정말 맛있어. 먹어봐."

아빠와 언니 입에 한 점씩 넣어 주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동안 느껴지 못했던 연어의 맛에 놀라움을 표현한다. 신이 난 나는 부엌에 와서 다시 연어를 열심히 저미고 있었다.


"정말 맛있다. 좀 더 줘봐! 좀 크게 썰어봐"

부엌으로 모여든 가족들. 조금 더 크게 저며서 입에 넣어달라는 아버지와 연어가 이런 맛이라니 라며 감탄하는 언니 입에 이번만큼은 큼직큼직한 연어 조각 몇 점씩 입에 넣어 준다. 어미새가 된 느낌이다. 다들 빨리 먹고 싶다며 재촉이다. 손이 바빠진다.


얇게 저민 연어회를 늘어놓고 아버지가 사 오신 복숭아주와 함께 가족회식을 시작한다. 잔에 술을 따르고 건배를 한다.


"예술이네. 딸들 덕분에 요즘 아빠가 정말 잘 먹어. 외식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니까.

밖에 나가도 이만하게 못 먹거든."


싱글벙글한 아빠의 얼굴이 함지박만한 미소로 유난히 더 동그레진다. 연어가 이렇게 맛있는지 미처 몰랐다며 다음엔 더 넉넉히 주문하자고 다짐까지 받는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하나 더 추가되어 행복했던 날.




연어샐러드, 선전지초밥
연어스테이크, 오픈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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