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한 기록들은 디테일을 남기지 않는다. 최대한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내용만을 남긴다. 이미 그 기억에 대한, 원망 같은 감정들은 내 마음 속 깊이 각인되었기에 쉽게 잊힐 리 없기 때문이다. 대개 그러한 기억들은 단기간 만들어지는 기억들이 아니다. 나는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이라 내 감정의 예민함을 먼저 돌아보곤 한다.
자기 검열로 이루어진 오랜 습관은 나의 예민함을 먼저 탓하는 성격으로 굳어졌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화내야 할 일들도 예민함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럴 수 있지" 하고 내 감정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나의 친절과 호의가 타인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은 내가 발행한 면죄부를 부도난 어음처럼 무례하게 들이민다. 충만했던 인류애는 모르는사이 야금야금 소실되어 마음속 깊숙히한참을 헤집어 찾아봐야만 할 듯하다.
제때에 분출되지 못한 감정은 한박자 늦게,아주 긴 시간을 지나서야,상대의 무례함을 바닥까지 철저히 확인하고 나서야 (작은 도화선들이 차곡차곡 쌓였던 시간들을 이해의 시간으로 보내려고 노력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는 방식으로 확인된다. 대개는 긴 시간 고민하고 판단한 결과이기에 상대의 무례함이 확신이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 썩은 나무는 애초에 조각할 마음을 버렸어야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고 싶어서 기록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기억없이 쓰여지는' 기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구태여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아도' 기억되는 마음과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