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타 Feb 01. 2024

애도의 시간은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


기억하고 싶은 않은 경험은 글로 남겨두지 않는 것도 나의 오랜 버릇 중 하나다. 기록으로 남겨두더라도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큰 줄거리만 남겨둔다. 나는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내가 풀어놓은 글들도 자주 읽는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은 자주 찾아 읽지 않을 것이기에 정성을 들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 마음으로 충분히 생각했기에 구태여 글로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감정의 찌꺼기들은 기록해두지 않아도 마음속 어느 구석엔가 가라앉아있기 마련이니 세세히 기록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떠도는 부유물이 되어 감정을 혼탁하게 만든다. 그러니 시간을 내어 문자로 남겨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나란 사람은 그렇다. 기억은 소멸되어도 감정은 남는다.



반면에 다른 이유로 자주 꺼내지 못한 기억들도 있다. 꺼내어 볼 용기가 나지 않는 기억들. 지난 몇 년간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그러했다. 아버지와의 이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소용돌이가 되어 내 일상을 흔들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서 봉인해 두었던 시간과 감정들. 어릴 때부터 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글로 풀어내리라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일상의 바쁨에 취해 뒤로 미루어 두었고, 돌아가신 이후엔 지난 시간들을 곱씹을 용기가 나지 않아 깊숙이 묻어두었다.



작년 한 해동안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글로 남겼다. 오랫동안 꺼내어 놓지 않았던 시간들이 언어로 그려진다. 나의 어린 시절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 속으로, 우리가 함께 했던 공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흘려온 시간들을 마주한다. 젊은 아빠의 애씀이, 철없던 나의 시간들이 그렇게 영화 속 장면처럼 흘러간다. 나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한 시간을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 그때의 분위기와 감성과 감정을 잊지 않는 것, 온전히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쓰는 동안 기억에 대한 강박과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는 강박 등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처하면서도 마음 한 편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꺼내어 묶어 놓은 글들을 보니 마음이 푼푼하다. 사진으로 기록해 두기 불가능한 우리의 추억들을 나는 다시 읽고 고쳐쓰기를 반복한다.


애도의 시간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찾아왔나 보다.   






[아이스크림은 못 참지!]

© newtpotion, 출처 Unsplash







이전 02화 기록된 기억을 다시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