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기록을 읽는 현재의 마음
어딘가에 기록된 마음은 책꽂이에 잘 꽂아둔 아끼는 책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언젠가 다시 읽어보겠지, 그리고 나의 부족한 기억들을 채워주겠지 하는 안도감. 생각해 보니 나는 늘 무언가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기억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소소한 것일지라도. (기억에 대한 저장강박이랄까.)
얼마 전, 아이디와 패스워드조차 가물가물해진 어느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 남겨둔 글을 읽다 언제 적어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초콜릿 공장을 견학하고, 샬레를 체험하는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계획한 그 글에 의하면 스위스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모양인데,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고도 5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상상으로 적어놓은 글의 내용 가운데 실제 여행 중 경험한 것이라고는 산악기차를 타는 것, 융프라우호에 방문한 것 등 몇몇 가지뿐이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그 이상으로 빛나고 만족스러웠다.
지금의 이 기록들도 언젠가 다시 읽어볼 미래의 나를 위한 글들이다. 미래의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소소한 일상들.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느낌들을 담아내는 것. 그리고 그 기억들에 대한 현재의 마음을 덧붙여 기록해 두기.
이렇게 어딘가에 기록된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마음들이 피고 지며, 계절처럼 시시때때로 다른 옷을 입고 나를 맞이할 것이다.
© ellienelie,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