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바라본, ‘작은 것’의 아름다움들에 마음 빼앗긴다
전화 속 K는 말한다
‘오늘 별일 없어?’
‘오늘 별일 없었어?’
별일? 재밌는 일? 별일은 없지
이제는 이렇다 할 어떤 특별한 것보다
하루를 더 좋게 살았는지를 생각한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얼핏 바라본, 작은 것들,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동안 무수히 내 곁, 내 눈앞에 있는 작은 것들을 응시하지 못했다.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는 얼핏, 때로는 깊게 내 곁의 작은 것들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행사 출신이기도 한 대지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 작품을 좋아한다.
우리에게 빛의 예술가로 알려진 제임스 터렐은 시각예술에서 사물을 인식하기 위한 보조적 역할이었던 ‘빛’을 매체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자연의 순수한 빛과 색을 조각적 오브제로 사용했다.
빛을 ‘깨달음 그 자체’라고 말했던 그는 관람자들이 작품을 통해 하늘과 빛을 관조하는 가운데 하늘과 빛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그 시간을 통해 내면의 빛과 마주하도록 한다. 이는 그의 종교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긴 하다. 퀘이커 교도였던 할머니가 “마음속에 빛을 지닌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했던 종교적 조언이 예술작품에 녹여진 것이다. 몇 해 전, 그의 작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 원주에 있는 ’ 뮤지엄 산‘에 갔었다.
자연 속의 자연 같은 미술관 곳곳을 산책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 내어 다시 한번 들러야겠다.
요즘엔 아침저녁으로 ACC 지상 광장 산책로를 걷는 일이 많아졌다. 걷지 않았으면 놓쳤을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난다. 문화창조원에서 어린이 문화원 즈음의 거리를 걷다 보면 봄을 기다리는 나목들 사이사이로, 채광창 저 너머로 배경이 된 하늘을 만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이 계속 신호를 보낸다.
“아! 예쁘네”, “멋져”
일요일에는 친구와 광주호 호수생태원 산책길을 걸었다. 메타세쿼이아, 버드나무 숲을 지나며 물결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차가운 바람에도 제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겨울나무들이 경이롭다.
봄을 기다리는 숲의 나무들은 매년 겨울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서서 추위를 견딘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 푸른빛으로 빛나는 무등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우리는 무엇이든 앞모습에 익숙하다. 뒷모습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길들여진 시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의외의 것은 크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에 깃들어 있다.
작은 것은 큰 무엇보다 훨씬 많다.
작은 것을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올 한 해를 보내는 12월이다.
김규동 시인의 <송년>이란 시를 읽는다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들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만한지
(...)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김규동(1925-2011)의 시 <송년> 중에서
한가로운 산책자가 되어
길들여진 익숙한 시선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을 걸었다.
기러기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날개는 밤을 견딜만한지
생각하면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