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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다한 건전지를 ‘애도’

많은 사람들, 사물들 무심코 지나치지 않기

by 일상여행자


2022. 3월 27일 오늘 아침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려는데 무선 마우스가 먹히지 않았다.

마우스 몸체 뒷부분이 켜짐(ON) 상태인데 불이 깜박거렸다. 그렇잖아도 건전지가 오래간다 생각했었다. 언제든지 건전지 수명이 다하면 곧바로 바꾸려고 건전지 여분을 챙겨 두었었다.

노트북 가방에서 여분 건전지를 꺼내 바로 바꿔 끼웠다. 마우스 뒷 몸체에서 불안정하게 깜박거리던 붉은빛이 다시 차분해졌다. 느릿하게 움직이다 아주 멈추고 말았던 노트북 마우스 커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텅빈 마우스.jpg
불 깜박거림.jpg

“아차”


다 쓴 건전지를 폐건전지 전용 수거함에 넣기 전에(...)


‘애도할 틈을 내지 않았어, 그동안’


“그랬구나”


책상 위에 수명이 다 한 건전지를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마우스에 들어가는 건전지는 AA사이즈, 원통형, 한 번 쓰고 버리는 알카라인(Alkaline) 1차 전지(...)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사서 사용한다.


드로잉북을 꺼내어 건전지를 그렸다.


몇 번 선 긋기를 한 다음, 아직은 손과 마음의 일치가 되지 않지만 손기술이 부족하지만 이 순간의 느낌과 직관을 붙잡아 두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애도 라던지의 지금의 감정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무심코 넘기지 않고 붙잡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잠에서 막 깨어날 때, 혼자서 운전을 하고 먼길을 달릴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요즘엔 클라우드, 솜노트(SomNote) 폴더에 적어둔다. 나중에 열어보면 언제 내가 이런 생각을 했지 할 때가 많다.


이전에 프랑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에 대한 글을 읽다가 120이란 숫자에 놀란적이 있다.


어쨌든 내용은 이랬다.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이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오다가, 드디어 1991년 120여 차례 개작을 거친 <개미>를 출간,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_ 「열린 책들」, <고양이2>, 저자 소개글 중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 <개미>를 16살에 쓰기 시작해 28살에 완성했다고 한다. 12년 동안 120여 차례나 쓰고 지우 고를 거쳐 마침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죽어간 문장들, 죽음을 넘어, 살아낸 문장들 (...) 모든 살아있음 뒤에는 죽음이 있다.


다시 건전지


수명을 다한 건전지여서 일까 건전지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가 오늘따라 진하다. 그림자가 애잔하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타버린 마음 같다. 버틴다는 건 상실의 과정,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견뎌나가는 것이다.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로 인한 애도를 직면해야지 생각했다.


건전지의 형태를 이루는 또렷한 선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펜으로 직선과 곡선을 그린 다음 그림자를 그렸다. 나도 모르게 계속 그림자 부분을 강조했다. 왜 저런 그림자가 바닥에 있는 거지? 아마도 내 마음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건전지에는 편안한 휴식을 위해 노란 꽃을 함께 그렸다.

건전지.jpg
건전지 1.jpg
건전지2.jpg


두어 달 전쯤에는 현관문 번호키 건전지를 교체했었다. 언젠가부터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삐이삐이 하는 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 불규칙한 쉼이 있었다. 며칠 후에야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제 더 이상 버틸힘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힘겹다는 말을 그냥 모른 채 했다.


“건전지에 있는 마지막까지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건전지 4개를 모두 교체했다.

‘갑자기 문이 안 열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웠고 에너지가 부족한 건전지를 교체한 다음에는 건전지의 존재를 금방 잊어버릴 수 있어 마음이 편해졌다.


이번엔 애도를 해야지 생각했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애도란 장례를 치르는 것과 비슷하며 우리가 어떤 죽음에 대해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감정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 말에 동의한다.


애도란 상실의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 것, 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슬픔의 과정을 받아들임, 이를 거쳐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친숙한 관계, 환경, 중요한 애착으로부터의 상실의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전지를 그림으로 남기기로 했다. 나의 애도 방식이다.



ACC노란잎 조팝나무.jpg
건전지 노란꽃 2.jpg
조팝나무.jpg 광주 ACC정원에 핀 노란 꽃, 조팝나무이다(위 그리고 아래)



컴퓨터 마우스에게, 현관문에 부착된 번호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티는 힘을 준 건전지를 떠올린다.


“고마워”


내가 힘든 순간을 지나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것도 내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 내 곁의 사물들의 존재 때문이다.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존재들


“고마워”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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