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대신해 수 있어도, 너는 직접 말할 수 있기를

영어를 배우기 전에 사랑부터 배우는 시간

by 단월
AI가 통역해 주는 시대에도
너는 네 말로 세상을 만나기를 바란다.
엄마가 직접 영어를 가르치기로 한 이유.


2045년, 너는 어떤 어른일까.
엄마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5년
너는 아직 영어와는 친숙지 않은 작은 아이야.
엄마는 벌써부터 네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하곤 한단다.

요즘은 기계가 사람의 말을 번역해 주고
화면 속 캐릭터가 네 감정을 분석해 영어 문장을 대신 말해주기도 해.
아마 네가 어른이 되는 시대엔
말을 배우지 않아도
기계가 대부분 대신해 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말이야
엄마는 네가 그 모든 기술 속에서도
직접 말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그건 시험 점수를 잘 받거나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아니야.
그냥 너 자신과 너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자유롭고 신나는 일인지
알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엄마는 어렸을 때 우연히 오빠가 듣던
영어 카세트테이프를 혼자 듣고 따라 하면서
파닉스, 억양, 리듬을 자연스럽게 익혔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따라 하면서
“내가 이 말을 하니까 누군가가 알아듣는다”는
그 신기하고도 짜릿한 경험이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여는 첫 번째 문이었지.

그때부터였어.
영어는 점수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멀리까지 전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래서 지금
얼마 전 구입한 영어 전집을 꺼내 들고
엄마가 너희 셋을 가르칠 커리큘럼을 짜고 있어.

사실 비싼 책도 아니고
선생님을 따로 붙인 것도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어.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웃고 말할 수 있는 시간만큼
영어를 영어답게 익히게 해주는 순간은 없다는 걸.

엄마는 너에게
영어를 외우게 하고 싶지 않아.
말을 하게 하고 싶어.
틀리더라도 천천히라도 좋으니
너의 방식으로 세계를 열어가게 해주고 싶어.

요즘은 ‘4세 고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만 4살 아이들이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해
듣기 평가, 면접, 학부모 오디션까지 준비해야 한대.

엄마는 네가 그런 경쟁에 내몰리길 바라지 않아.
말과 글이라는 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거라고 믿거든.

그러니까 네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길 바라.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게다가 지금, 2025년 여름.
엄마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또 다른 흐름이 시작됐어.

영어유치원을 금지하는 법이 발의 중이래.
아직 시행은 안 됐지만
“만몇 세 이하 유아에게 영어교육은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걸 막자는 취지겠지. 맞는 말이야. 하지만 엄마는 생각해.
영어를 일찍 배우는 게 잘못이 아니라
경쟁으로만 배우게 되는 게 문제라고.

아직 말도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
혼자 밥도 못 먹는 네 또래 아이들이
책상 앞에 억지로 앉아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본다는 게
엄마는 정말 믿기지가 않았어.

사회성, 정서, 애착 관계…
아직도 사랑을 배우는 시기인데
그 시기를 외워서 이기기 위한 시간으로 바꿔버린 세상이 참 슬펐단다.

그 경쟁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
그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될 때
감정은 어떻게 품고 있을까.
타인과의 관계는 건강할 수 있을까.

엄마는 가끔 상상해.
2045년, 네가 어른이 되어 엄마와 마주 앉아 얘기할 때
우리가 웃으며 말하는 거야.

“엄마, 진짜 그런 시절이 있었어?”
“응, 시험 보려면 네 살부터 영어 학원 다니고 그랬지.”
“헐, 진짜?”

그리고 그때 네가 말해줬으면 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은 우리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엄마는 지금도 확신해.
아이에게 중요한 건
빠른 성취보다 함께 웃는 말 한마디,
완벽한 문법보다 실패해도 괜찮은 대화의 경험,
결과보다 마음이 닿는 연결이라는 걸.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있어도
그 말이 너의 입에서 너의 목소리로 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과 연결되는 충분한 시작이 될 거야.


keyword
이전 06화“왜 자연은 꼭 그래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