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못 믿겠다"는 아빠의 말 앞에서

세대를 잇는 배움의 태도, 그 웃음 뒤의 눈물

by 단월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아빠가 웃으며 넘긴 그 한 줄이
결국 내 눈물을 터뜨렸다.

아빠와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눈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나누는 다정한 부녀사이 었지만 손주들이 생기고 나서는 온통 아이들로만 가득한 대화뿐이니까.

아이들 방학을 맞아 친정에 머물던 어느 날,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든 어느 저녁시간.
오랜만에 찾아온 '우리 둘만의 시간'이었다.

평생 주식의 ‘지읒’도 모르고 살던 아빠가
갑자기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무작정 따라 사는 묻지 마 투자가 아니라
산업 흐름, 기술 분석, 기업 가치 등
가장 기초적인 개념부터 천천히 익히는
정공법의 배움이었다.

대화의 시작은 늘 그렇듯 아빠의 부탁이었다.
생성형 AI 툴을 써보고 싶다며
퍼플렉시티부터 여러 플랫폼을 핸드폰과 pc에 설치해 달라고 하셨다. 아빠가 AI를 궁금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내겐 놀라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빠, 뭐가 궁금한 거야?”
“앞으로 이 주식이 괜찮을까 싶어서.”

그 한마디 후에
그간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주식 프로그램을 하루에 몇 시간씩 켜놓고,
눈도 침침한데 그래프와 수많은 버튼들 하나하나 보는 법을 천천히 익혔단다.
하루에 몇 개씩, 몇 달 동안.

키오스크는 무서워서 거들떠도 안 보시던 분이
이제는 “한번 써볼까?” 하시고,
새로운 AI가 나왔다 하면 “이건 또 뭐야?”
하며 호기심을 가지신다.

아빠도 변하려고 노력하시는구나.
그걸 알게 된 게
나는 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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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감정은
그다음에 터져버렸다.

아빠가 수강 중인 강사님이 말했단다.
“그날그날의 주가 현황은 보지 마세요.
눈앞의 등락에 휘둘리면 장기적인 판단을 놓칩니다.”

그 말을 들으셨음에도
자꾸 ‘현황’을 보게 된다고. 1분 단위로 등락을 반복하며 반짝거리는 그래프를 보고 달려드는 게 불나방 같다고.
급해진 마음, 흔들리는 감정,
알면서도 따라가고 싶은 충동.
그게 자신도 너무 싫다고.

나는 원칙적으로 말했다.
“아직 배우는 입장이면, 선생님 말을 따르세요.”

곧이어 아빠가
두꺼운 주식 노트 한 권을 꺼내셨다.
거기엔 매일매일의 공부와 투자 기록,
본인의 생각, 느낀 점들이
빽빽하고도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딱 한 문장. 아빠가 이렇게까지 한다며 멋쩍은 듯 웃으면서 보여주셨다.

“나도 나를 못 믿겠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빠는 마구 웃으며 보여주셨기에 나도 처음엔 "이게 뭐야 너무 웃기잖아~~~"라고 눈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는데 이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눈치채셨을까.
아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웃음은 딸을 살피며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왜 아빠의 노트 앞에서 눈물이 나왔을까.

그건 아빠의 노력이 짠해서 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살아오며 단단하다고 믿어온 존재의 속살을 처음 본 느낌이 아니었을까?


늘 강해 보였고

모든 걸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은 아빠가

“나도 나를 못 믿겠다”는 말로

스스로의 흔들림과 연약함을 고백했을 때,

그건 단지 투자 실패의 두려움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두고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불안을 조심스레 털어놓은 거였으니까.


그 순간 나는

‘아빠도 결국 나처럼 불안하고

나처럼 흔들리고

나처럼 확신이 없구나’ 하는

이해와 닮음의 순간을 마주한 거다.


그러니 그 눈물은

단지 짠함도 아니었고

감동만도 아니고

불쑥 찾아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이 마주한 눈물이었을 터.




나는 이 장면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람은 언제든
70이 넘은 나이에서도
자신을 바꾸려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결심하고 시행착오하고,
또 기록하고.
그것이 멋진 어른의 모습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적어 내려간 노트 한 권이
어떤 책 보다 더 깊이
한 사람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
2024년,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니?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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