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심 속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
아이들이 귀한 시대,
그 동네는 정말로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함께 키우는 곳’이었다.
각자 문 닫고 사는 세상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진짜 ‘함께’의 온도를 느꼈다.
이 동네의 첫인상은 ‘따뜻함’이었다.
등원길에 만나는 어르신들, 산책하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경비 아저씨, 같은 라인의 이웃들까지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첫째가 안 나왔네?”
“둘째 감기 다 나았어요?”
그렇게 인사 몇 번 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열렸다.
아이가 귀한 동네라 그런지,
지나가는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꼭 한 마디씩 하셨다.
“아이들이 다 예쁘다, 복스럽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기쁜 얼굴을 했다.
그 순수함이 이 동네의 공기를 더 말랑하게 만들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첫째 하원 갔다 오세요, 저희가 둘째 보고 있을게요.”
“셋째(젖먹이 아기) 보채니 집에 다녀오세요, 애들은 저희애들이랑 놀고 있으면 돼요.”
그런 말이 오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남편이 출장이나 회식으로 늦는 날이면
이웃이 “오늘 같이 밥 먹어요” 하며 초대해 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함께 놀았고,
우린 피곤한 하루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얻었다.
둘째 소풍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직은 밤새 돌봐야 할 시기의 셋째가 있다는 걸 아는 반 친구 엄마가
“제가 도시락 하나 더 준비했어요, 어차피 같은 재료로 한 개만 더 하면 되잖아요.”
웃으며 내 아이 도시락을 대신 싸주던 이웃의 그 마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은 둘째 아이 병원 진료 중
첫째 하원 차량 시간이 겹쳤던 날,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동네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대신 기다릴게요, 걱정 말아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친정도 아닌 이웃 중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그 시절,
도심 한가운데 있었지만 이곳은 작은 마을 같았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
온 동네가 한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시절.
그 짧고 소중했던 시간 덕분에
나는 이 동네에 더 깊이 녹아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