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관계가 식는 건 언제나 큰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 너무 익숙했던 일상 속에서
조용히 — 그러나 분명하게, 균열이 스며들었다.
정이 떨어지는 일엔, 언제나 거창한 이유가 없다.
그건 늘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들 속에서 시작된다.
먼저, 그 친구의 이사가 있었다.
이 동네를 처음 알게 해준 사람이었고,
폭우가 내리던 그날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인연이었다.
그 친구가 짐을 싣고 떠나던 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뒷모습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아무 일도 아닌 이별인데,
그날 이후로 이 동네가 조금 낯설어졌다.
며칠 뒤, 사과 한 상자를 주문했다.
아이들이 사과를 유난히 좋아해서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직접 농원에서 받아다 나눠주신다기에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상자 속 몇몇 사과가 이미 상해 있었다.
별일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쓱 식었다.
‘처음이라서 그랬나 보다’ 하고 넘겼지만,
그 이후로 그분과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 톤이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둘째의 어린이집 일.
아이가 아침마다 울며 “가기 싫다” 하던 그 시기였다.
처음엔 잠투정인 줄 알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에게
꽤 큰 소리를 지르셨다고 했다.
학대라 할 수는 없지만, 믿음이 금 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쌓인 신뢰와 애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정이 깊었던 방문교사님께
이사 소식을 전했다.
정말로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 새 집에서도 와주실 수 있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날 처음으로 그분의 얼굴에서
표정이 단단히 닫히는 걸 봤다.
그 표정이 오래 남았다.
그토록 다정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단절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마음은 천천히 멀어졌다.
큰 싸움도, 다툼도 없었다.
다만, 사소한 일들이 겹치며
내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낮췄다.
그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져 있던 이사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저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1년만 더 있어볼까?’ 하던 마음이
‘이제는 떠날 때가 됐구나’로 바뀌는 동안,
그 모든 사소한 일들은
이별을 덜 아프게 만들어준 계절의 손길 같았다.
정이 식는 건 끝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다음 계절로 건너가는 자연스러운 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