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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Dec 26. 2021

고요한 밤, 비루한 밤

20211226

20211226 고요한 밤, 비루한 밤


2020년 2월에 내가 복학했을 때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비대면 강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비대면 강의에 준비가 안 된 건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학기가 시작됐지만 강의는 실시간으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대부분 정해진 기간 내에 들으면 출석이 인정되는 식의 동영상 강의였다. 어차피 당장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며칠은 쉬면서 여유를 부려도 될 거 같았다. 복학 전 일을 다니는 동안 왕복 3시간 거리를 통근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했으니 좀 쉴 만하다 싶었다. 그래서 다 제쳐두고 일단 잤다. 자고 싶은 만큼 자는 생활이 편했다. 너무 편해서 정신을 차려 보니 2020년 한 해가 다 가 있었다.



비대면 강의는 잠이 많고 뭐든 잘 미루는 내 체질에 딱 맞았다. 할 일은 최대한 미루고 낮잠을 푹 잤다. 그러다 보니 슬슬 밤에 잠이 안 왔고 생활 패턴은 ‘주침야활’이 됐다. 그렇게 지내야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고 그렇게 지내면 안 될 이유는 많았다. 항상 피곤했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체력도 안 좋아졌다. 강의는 늘 정해진 기간의 끝자락에 겨우 들었고 과제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날에 얼렁뚱땅 내버렸다. 벼락치기가 익숙해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땐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불행한 일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집에 박혀 있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 생각해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일단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한낮에 일어나다 보니 느지막하게 카페에 가면 얼마 안 있다 문을 닫는 것이었다. 기상 스터디도 해봤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만든 후 아침에 밖에 나가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서로 기상을 인증하는 스터디였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밤을 새우고 아침에 나가서 사진을 찍어 올린 후에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굳어진 생활 패턴을 바꾸지 못했다.



할 일도 다 내팽개치고 뭘 했냐 하면,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고 살았다. 야속하게도 하필 그때 재미있는 게임들이 출시되어버렸다. 레이싱 게임과 야구 게임으로 매일 밤을 새웠다. 게임을 하다 잘 안 풀리면 억울한 맘에 아이템을 결제해서 샀다. 문제의 원인은 내 실력이었으므로 돈을 써서 아이템을 사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쓴 만큼은 결과가 나와야 한단 생각에 게임에 더 몰두했다. 그러다 아침이 오면 헛되이 지나간 돈과 시간에 후회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밤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또 게임을 켰다.


그래서 그 해엔 여름이 싫었다. 아침이 빨리 오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오고 동이 트면 지난밤 어둠 속에서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동이 틀 때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게임과 관련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방에 빛이 들며 그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게 싫었다. 누군가 하루를 시작할 때 나는 하루를 저버리고 잠드는 게 수치스러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름이 지나 날이 서늘해졌고 그때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갈피도 못 잡고 나태하기만 하던 나를 나 스스로도 형편없다 생각했다. 상대방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그때 나는 부정적인 기운만 가득했고 그 기운은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전이됐다. 그래서 그냥 내가 헤어지자 했다. 나는 나만 있는 좁은 방 안으로 깊숙이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그러다 슬슬 게임이 다 질려버렸다. 열을 올리며 하던 게임이 하기 싫어져서 어느 날 거짓말처럼 단번에 끊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나 많은 밤을 게임으로 지새웠는지 알았다. 게임을 끄고 나니 현실이 보였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딱히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막연히 돈 잘 주고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쟁쟁한 지원자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느꼈다. 그럼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않고 그냥 잠만 자고 게임만 했다. 두려워서 그랬다. 막연한 미래에 대해 선택을 내리기가 무서워서 방 안에서 핸드폰 화면에만 고개를 푹 처박고 있었던 셈이다.


작은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밤이었다. 고요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딱 하나 들리는 게 있었다. 내 숨소리였다. 그게 절망적이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들 힘차게 달음박질해 어딘가로 가버리고 나만 도태된 것 같았다. 나 밖에 없는데도 나 자신이 민망해서 숨죽여 눈물을 훔쳤다.



요즘은 밤이 얼마나 고요한지 잘 모른다. 피곤해서 베개에 머리를 대면 금방 잠든다. 어쩌다 보니 그때의 악순환을 빠져나왔다. 나름 꾸물거리며 한낮의 볕으로 나오기 위해 노력했고 운도 따라줬다. 다행이다. 고요한 밤 속의 비루한 나를 계속해서 미련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면 나는 그 밤에 잡아 먹히고 말았을 거다.


사람은 해 뜰 때 생활하고 해 지면 자야 하는 동물이다. 밤은 몸도 마음도 약해지게 만든다. 이제 더 이상 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밤의 적막을 들여다보다 그 속에서 괜한 불안과 외로움을 마주치게 되어 몸서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밤의 감성에 젖어 궁상떨지 않고 말하자면, 잘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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