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고 다른 삶
이사라고 할 것도 없는 이사를 마치고 삼 개월이 지났다.
한국 사람이 많이 모여 산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아파트.
안전하다는 게 자랑인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피할 수 없는, 익숙하지만 적응 안 되는 냄새가 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갑자기 코를 찌르는 청국장 냄새에 깜짝 놀란다.
벽에 스며든 생선 냄새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선다.
기름기 질퍽한 공기가 피곤에 쳐진 몸을 맞이한다.
룸메이트 언니는 이틀 째 소뼈를 끓이고 있다.
맛있는데 가장 싼 고기란다. 언제부터 뼈가 고기가 되었나.
음식 만드는 게 취미라더니 지난주에는 만두를 하루종일 만들기도 했다.
그 많은 만두는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내가 사놓았던 냉동실의 고기를 빼내던 언니.
"고기 냉동실에 오래 보관하면 맛 없어지는 거 알지?"
한국 학생이 태반인 영어 학원에 다니고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서울에서 보다 한국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도 다양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학원 학생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식당의 손님들.
아파트 건물의 이웃들.
그들을 복도나 로비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어느 땐 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닌 가?라는
의심마저 든다. 어쩌면 그렇게 적절치 않은 타이밍에 말을 거는 걸까?
그들의 첫마디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 건 지난번 살던 곳보다 이곳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또 다른 공통적인 말은 이 아파트에는 흑인과 스패니쉬가 없어서 좋다는 거다.
이들이 살면서 겪었던 흑인이나 스패니쉬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결국은 같은 수준의 사람들 아니었을까? 수준이 다르면 만날 일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들의 걱정은 이사 오는 중국인들이었다. 아파트가 시끄럽고 지저분해질 거란다.
그러면서도 이어폰 없이 켜져 있는 유튜브 방송이 내 귀에는 안 들어온다고 생각하는지 소음 속에서
끝 모를 수다를 떤다.
약간의 지루한 표정을 지을라 치면 그때서야 눈치를 챙긴 듯 행동하며 늙은이가 주책이지?라고 묻는다.
가끔 할머니들이 건네주는 사과나 빵, 우유, 요구르트가 있다. 부담스러워 마다해도 손에 쥐어주 건 한다.
그 음식물이 무료 급식소에서 나눠주는 것이고 몇몇 노인이 기어코 한 두 개씩을 더 챙겨 온다는 이야기를 해준 건 어느 할아버지였다.
"저 여편네들이 한국 사람들 망신 다 시킨다니까.. 한 사람당 하나씩인데 꼭 한 두 개를 더 달라고 해.."
할아버지는 혀를 차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디서 중국 사람이나 하는 짓들을 하고 그러는지.."
중국 사람이 그러는 거 보셨어요? 할아버지는 돈 잘 버는 자식 자랑, 공부 잘 하는 손주 자랑하시며
무료 급식소는 왜 가세요? 라고 묻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로 할머니들이 주는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건 잊지 않았다. 흔하기만 한 사과는 먹지 않은 지 오래됐다.
오늘도 멀어져 가는 맨해튼을 뒤로하고 플러싱 역에서 빠져나온다.
거리의 고린내를 외면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늦은 밤 버스에 앉을자리가 없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버스 손잡이에 의지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영어 간판이 보기 드문 거리를 지나 버스에서 내린다.
꼭 한 번은 살고 싶었던 뉴욕. 욕망에 떠밀려 너무 멀리 온 건 아닌가.
이 거대한 도시에 완전히 혼자인 느낌이 들었다.
아니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룸메이트 언니가 얘기한다. 내가 냄새를 묻혀 집으로 온단다.
나에게서 언제나 반찬 냄새가 난단다.
식당에서 일하는 나에게 할 얘기인가?
족발을 몇 시간이고 삶는 사람이 할 얘기인가?
이 언니는 언제쯤이나 본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