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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Oct 25. 2024

꿈, 그 어디쯤 A8

무의식

"당신은 곧 죽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믿거나 안 믿거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입니까?"

"꿈을 깨서 다른 꿈을 꾸는 거지요."


매일 같은 남자를 만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 짧지만 머리숱 많은 흰머리에 먹칠을 한 듯 보이는 귓가의 검은 머리.

어느 때는 사십 대로, 어느 때는 육십대로 보이기도 한다. 아님 칠십 대.

체구는 실물 크기보다 작은 등신대 마냥 축소돼 보인다.

머리 큰 아이나 난쟁이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성인 남자의 크기를 70% 정도로 축소한 것 같은 모습.

기이한 모양새지만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 제압하기에 딱 좋은 크기의 남자.

옷차림은 언제나 흰색 바탕의 녹색 세로줄이 있는 잠옷 차림이다.

반팔 잠옷. 내가 그자의 하의를 본 적이 있었던가?

그 자가 서 있는 모습을 본 것도 같지만 어느 틈엔가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있다.

우리는 푸른색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꿈에서 본 남자라기보다는 꿈에서 만나는 남자.

"그게 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 6시가 조금 안 돼 눈을 떴다.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어 날씨를 확인한다. 맑음, 낮 최고 기온 화씨 74도.

반팔로 집을 나설지 고민을 하며 유튜브 방송에서 여러 패널들이 나와 떠드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

쉴 새 없이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전동 칫솔의 소리와 섞인다.

언어와 소음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귀. 칫솔의 기계음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 음악처럼 귀를 홀리지만 무의식으로도 가능한 일상에 집중은 필요 없다.

씻고 커피를 준비하고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쉴 새 없이 패널들은 자기주장을 떠든다.

그들의 주장에 내 주장을 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배경음 아니었나.

차에 타 시동을 건다. 라디오를 켠다. 이번에는 영어다. 리듬감 있는 언어가 이어진다.

차의 기어를 넣고 가스 페달을 밝으며 차는 출발한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집중해서 들을 여력이 없다. 거북한 혼자의 침묵에 긴장을 유지시키고,

거리의 소음을 걸러 주는 것에 만족한다.

20여분 후,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한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 눈인사를 안 한다면 나에게 하는 말인지 통화를 하는 것인지 알 수없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음악소리. 6시 퇴근 시간까지 들어야 할 소리. 

선곡은 유튜브의 자동 선곡. 알고리즘에 따라 끊임없이 그렇고 그런 음악이 흐른다.

어떤 일탈도 없이 당신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컴퓨터가 선곡한다.

나는 흐르는 음악에 귀를 맡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믿는다. 곧 의식에서 멀어질 음악을.

무의식에서 들리는 음악은 저 멀리 연기처럼 희미해진다. 더 이상 귀를 괴롭히지 않는다.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이메일을 읽고 있는 내내, 사내의 메신저가 쉴 새 없이 말을 건다.

업무와 관계된 일보다는 점심으로 뭘 먹을지? 주말 계획 같은 걸 서로 묻고 있다.

관심이 있어 묻는 질문이 아닌 관심 있는 척을 위한 질문들. 오고 가는 문자로 서로에게 안심한다. 

같이 할 업무라는 게 드문 디자인 회사. 보정의 보정을 해야 하는 나의 직업.

모니터 속 사진은 나도 모르게 현실이 돼버린다. 현실은 보정을 못하는데도 말이다.

가본 적 없는 어느 마을의 사진 작업을 일주일 째 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마을 사진을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달받은 유럽의 사진을 눈이 시도록 바라보며 어느 때는 코 앞까지 다가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의자를 뒤로 밀어 거리감을 두기도 하며 모니터 속 사진을 보고 또 본다.

꽃이 만발하고 아담한 돌집들 뒤편으로 만년설이 보이는 사진. 사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창틀을 넘듯이 오른발을 올리고 고개가 올려지고 남은 발을 올려 모니터 안으로 뛰어든다.

일주일째 바라본 풍경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오솔길을 걸어 본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과도하게 웃음을 흘리는 사람들. 그 가식적 웃음에 내 얼굴은 굳어진다.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눈인사는 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난다. 빠르게 걷지만 목적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가고 싶지 않은 장소를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라는 상사의 지시가 공허하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어 서 일까? 왼쪽 무릎이 시큰거렸다. 돌아가기 전에 마을의 뒷모습을 눈에 담는다.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오솔길 뒤편, 돌집 창문 뒤를 기억에 새긴다.

사람들이 집 뒤편에 걸려있는 작은 그네를 보면 이 마을에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은 잠시, 점심시간이 됐는지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고 누군가 나에게 뭘 먹겠냐고 묻는다. 

그는 샌드위치를 싸왔다는 내 대답에 손을 흔들고는 재빨리 등을 보인다. 저 사람이 했던 찰나의 질문이 나에게 했던 것인가를 되뇌면서 샌드위치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며 불편 해 공원까지 가는 건 포기하고 사무실 건너편 비어있는 벤치를 찾는다. 맑은 날씨 때문인지 비어있는 벤치가 많지 않다. 비어있는 벤치에 다가가 앉으려니 흐릿한 이물질이 눈에 띈다. 비둘기 똥일까? 페인트 일까? 앉으면 바지에 묻을까? 손으로 닦아보면 알 일이 멀게만 느껴져 앉지 않는다. 벤치 앞에 서서 샌드위치가 든 봉지를 연다. 어젯밤에 만든 샌드위치를 가져왔다고 믿었는데 며칠 전 먹다 남은 피자가 봉지에서 나왔다. 호기심에 피자를 씹어 봤다. 차가운 피자는 종이 박스와 고무줄을 함께 씹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입 베어 물은 것은 책임감 때문에 씹어 목구멍을 넘겼다. 남은 피자는 다시 봉투에 넣으려다가 비둘기가 모여 있는 곳으로 던져 버렸다. 다행히 피자에 맞은 비둘기는 없었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살폈다. 귀에 꽂은 크고 작은 이어폰들. 뭔가를 듣는 사람들, 뭔가를 얘기하는 사람들. 걸으면서 조차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들. 벤치의 사람들은 거북목을 한채 전화기를 들여 다 보고 있다. 눈길에 닿는 모든 사람이 자기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누군가가 준비해 준 꿈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디까지가 진짜 일까? 주변을 둘러볼수록 비어져 가는 머리가 혼란을 더 한다.


오전의 사진 작업을 이어 가는데 팀장이 회의를 하자며 팀원들을 호출했다. 팀장까지 5명의 팀원이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여행사가 의뢰한 관광지 브로셔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그간의 작업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각자 맡은 나라별로 발표가 이어졌다. 나는 허기 때문인지 기운 없이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른한 정신은 꿈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듯했다.

내 발표 차례가 되었을 때는 길게 말을 이어 갈 처지가 아니었다. 의례적으로 몇 마디를 했다.

사진 작업할 때 인위적인 그래픽을 좀 더 넣자. 예를 들면 원본에는 없는 그네라던가, 거리의 사람들을 뺀다던가 같은 작업을 하자고 간단히 힘없이 이야기했다. 자신도 언제 끝날 지 모를 회의를 시작한 팀장이 내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결말을 지었다.

"그렇지 사진 원본에 목맬 필요가 뭐 있겠어!, 에이아이가 그림 그리는 시대에.. 손님이 만족하면 그만이지.. 나는 미스터 양 의견에 동의하네, 다들 원본 사진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 개성을 살려 보라고.. 다른 의견들 없으면 회의 끝!"

힘 없이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를 다시 들여 다 본다. 자판기에서 뭐라도 사 먹어야 되나를 고민하는데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얹어졌다. 빠르게 하지만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니 팀장이었다.

"디자인 작업에 여러 효과를 넣으면 팀원들이 작업량 많아진다고 컴플레인할 까봐 말 못 했는데.. 미스터 양이 내 할 말을 대신 해줬네.. 고마워!"

팀장은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무심히 멀어졌다. 현실감 없는 칭찬에 의미 같은 건 없었다.

바로 지난주, 내가 작업한 두오모 성당의 분위기가 너무 밝다며 팀원들 앞에서 길길이 날뛰던 사람이다.

팀장의 어느 모습이건 현실적이지 않다.

가본 적 없는 밀라노의 두오모는 밝은 분위기여야 할 거 같았다. 고딕 양식이고 수많은 조각과 첨탑으로 지어졌다고 분위기가 엄숙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사진 속으로 수 없이 들어가 봤다. 전달받은 사진 한 장으로 두오모의 느낌을 결정하지 않았다. 종아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계단을 오르내렸고 괴이한 조각상을 보고 또 보는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두오모에 가 봤다는 팀장은 내 의견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가서 보면 두오모의 위압감에 압도된단다. 신을 찾게 되고 경건한 마음이 들어 인간은 두오모 앞에서 밝아질 수가 없단다. 

"미스터 양 사진에는 현실성이 전혀 없잖아!" 팀장이 팀원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었다.

팀장은 고작 한 번 두오모에 가 봤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두오모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현실을 파악 못하는 건 내가 아닌 팀장이었다. 가봐야 알 수 있는 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팀장은 모른다.

인스타그램에는 3백만 장이 넘는 밀라노의 두오모 사진이 포스팅되어 있다. 누구나 앉은자리에서 두오모로 날아갈 수 있다. 공간은 무의미하다..

현실을 인지 하건 안 하건 시간은 흐른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불필요한 작업으로 눈이 시려 올 때 퇴근 시간이 된다. 미시감이 드는 눈인사를 서로에게 나눈다. 이 사람들 모두가 환상에서 깨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 까? 또 다른 꿈을 꾸려고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나선다.

꿈에 그리던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겠다는 미스터 리, 꿈같은 결혼 생활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미시즈 윤, 가족에게서 꿈을 찾는다는 팀장. 모두가 그 어디쯤에서 각자의 꿈을 좇는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다가가면.. 꿈은 언제나 딱 다가간 만큼 저만치에 서 있다.

꿈은 인간을 조롱한다. 정작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꿈이라는 걸 모른다고.

20여 분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온다. 현실적으로 다가 온 피로감은 더욱더 현실감을 못 느끼는 머리로 만든다. 뇌가 술을 부른다.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가벼운 운동복에 셔츠를 걸치고 자전거에 오른다. 불편한 다리로 걷기에는 멀고 음주 운전은 살인 행위이기에 자전거를 탄다. 술을 마시러 가는 길은 경쾌한 리듬을 탄다.

목적지에 도착해 자전거를 세우고 체인을 묶어 자물통을 채운다.

허기에 지쳤는지 배는 안 고프다. 집에서 가깝고 값이 싼 중국 꼬치집 앞이다.

꼬치집의 문을 힘 없이 밀고 들어 가 티브이 앞에 앉는다. 흘러간 홍콩 영화의 뮤직 비디오가 항상 켜져 있는 곳. 

주문지를 받아 원하는 꼬치에 표시를 하고 종업원에게 돌려준다. 말이 필요 없는 곳. 말이 필요 없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갈증을 참았다. 물도 안 마셨다. 차가운 컵에 담긴 맥주를 숨을 참아가며 목구멍으로 넘겼다. 칼칼한 맥주가 목젖을 간질인다. 나는 홍콩의 어느 식당에 앉아 있다. 시대가 불 분명하다. 현재도 미래도 아닌 것 같으니 과거? 홍콩을 가 보았던가? 무의미 한 시간과 공간에 집착을 한다. 가 보았던 여행지가 떠 오른다. 단지 시간이 달랐던 내가 서 있던 공간에 내가 아는 그도 서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둘 중 한 사람은 꿈을 꿨던 게 아닐까? 내가 갔던 곳은 나의 상상이었을까?

모둠 꼬치가 눈앞에 놓인다. 꼬치 한 입에 맥주 두어 모금을 반복한다. 

꼬치에서 빠져나와 입에서 씹히는 염통에만 집중한다. 빈병이 되면 부리나케 치워가는 종업원 덕분에 얼마나 마셨는 지를 모르겠다.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꼬치집을 나선다. 자전거를 묶어 놓은 가로등 앞에 서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흔들리는 손으로 자전거의 체인을 풀고 자전거에 오른다. 비틀거리는 자전거에 몸을 의지하고는 안간힘을 쓴다. 넘어지면서 까지 현실을 느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픈 게 현실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안다. 왼쪽은 꿈, 오른쪽은 현실. 나는 그 사이를 곡예하듯 자전거를 몰고 있다. 어느 쪽으로 넘어지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그게 그것 같은 현실 아니 꿈. 나는 어디쯤인가? 어디쯤이냐고 반복해서 묻다 보니 집 앞에 다다랐다. 꿈인가? 현실인가? 끝까지 왼쪽인지 오른쪽 인지 결정을 못 했다. 집안으로 몸을 밀어 넣자마자 여러 패널들이 나오는 유튜브 방송을 켠다. 옷을 급히  벗어던지고 전화기를 들고 욕실 문을 연다. 패널들의 목소리가 샤워기 물소리에 스며든다. 들리는 건 물소리뿐. 샤워기를 잠그자마자 패널들의 주장이 이어진다. 말하는 자들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시간.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애쓰지 않아도 시간을 잊을 수 있다. 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일들을 용기 있게 떠들어 대는 그들이 저 세상 사람들 같다. 수건으로 대충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든다. 유튜브를 끄고 티브이를 켠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중국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 주인공들이 중국말을 하고 자막도 중국어로 흐른다. 이순재가 중국말을 하는 것이 우스워 채널을 고정한다. 눈에 익은 한국 배우들 모두가 중국말을 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입술에 집중한다. 귀를 열고 이순재와 나문희를 바라보니 이들이 원래 중국 사람들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보니 어떤 아이의 엄마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며 기억이 떠 올랐다. 나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기억난다. 그렇지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지금 어디 있지? 그럼 애 엄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내와 자식은 꿈이었나? 또다시 꿈과 현실이 구분 안 된다.

일상의 공간이 바뀌면 기억은 흐릿해진다. 흐린 기억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이 된다.

그 기억 속 가족은 나의 가족이었을까?

기억조차 꿈이라고 생각하면 꿈이 되는 게 아닐까?

흐린 기억은 꿈이다. 기억으로 이뤄진 인생에 의심이 생긴다.

환상인지 기억인지 모를 것이 이어진다. 내 기억 속 그 여자와 아이는 누구인가?



매일매일 우체부를 기다리고 우편 박스를 바라보는 날들이었다.

나날이 목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갔다. 막연한 희망으로 버티고 있었다. 희망을 버리고는 살 수 없었다.

주말에도 사장이 나오라면 모든 일 제쳐두고 뛰어 나갔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일상이었다. 피곤하다는 말이 사치였다. 

영주권만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었다. 변호사가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미국이 미스터 양 같은 사람 영주권 안 주면 누굴 주겠습니까?"

딱 거기까지였다. 미국은 나 같은 사람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았다.

믿고 있었던 변호사가 서류 제출을 제 때에 못한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변호사를 찾아가 따졌다. "변호사님 제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요!"

변호사는 나에게 법대로 하라며 화를 냈다. 그 사람과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로 두 차례나 변호사들 지갑 불려주는 일을 거친 후에야 나 같은 사람에게는 미국이 영주권을 안 준다는 걸 알게 됐다.

배관공 기술만 있으면 미국에서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친구의 선배는, 그때서야 합법적 신분 이야기를 했다. " 양 형 아무래도 영주권 없이는 힘들겠는데.. 이민법이 까다로워졌어." 

쉽게 합법적으로 신분변경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본인이었다는 것을 나는 상기시켜 주지 못했다. 한국의 가족과 헤어져있는 시간은 길어지기만 했다. 2년만 서로 고생하자고 했던 애초의 약속은, 시간을 넘고 넘어 이제는 10년을 바라본다.

가정주부였던 아내는 무슨 일이 건 하고 있을 테고 초등생이었던 아들은 군인이 됐을 거다.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주급을 덜 받기는 했지만, 일을 찾으니 일거리는 끊이지 않았고 한국으로 돈을 보낼 수 있었다. 그것도 아련한 옛일이지만 말이다. 3년 전 건물의 배관을 연결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 주급 오십 불을 더 주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이틀 만에 일어 난 사고였다. 보험도 없다며 망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사장의 눈은 꿈을 꾸는 자의 것이었다.

수술을 마쳤지만 나 자신이 버겁기만 한 시간이 시작되고는 끝 모르게 이어졌다. 

거리감이 몇 광년이나 떨어진 듯 느껴지던 아내가 자기를 놓아 달라고 했다. 내가 붙잡은 적이 있었나?  내가 붙잡은 적은 있었냐고 물으니 아내는 소식을 끊었다. 나에게 아내가 있었나? 아니 결혼은 했었나?

예전에는 존재했던 것들이 이제는 흩어지지 않는 안개에 갇혀 희미하기만 하다.

그 마저도 안개가 걷히면 사라지고 없을 것들 이기에 소름이 돋는다.


일거리 생기면 형님께 제일 먼저 전화할 게라고 말한 사람들. 나는 매일매일 그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멀었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나에게 당장 맞닥뜨린 일은 살 곳 걱정이었다. 먹을 건 걱정이 없었다. 무료 급식소도 있고 오후 늦게 동네 학교 앞에 가면 봉지도 뜯지 않은 음식물이 쓰레기차를 기다리며 쌓여 있었다. 유효 기간이 선명하게 찍힌 빵, 우유, 간식거리가 있었다. 간혹 터진 우유팩이 있긴 했지만 깨끗한 음식을 골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는 계속해야 했다. 혼자 살던 1 베드 아파트에서 스튜디오로.. 스튜디오에서 룸메이트를 찾아야 했고,  지금은 교회에서 소개해준 지하방에서 결벽주의 알코올중독자와 살고 있다. 

더러운 잔으로는 절대로 술을 안 마시는 알코올중독자다. 그는 술을 마시기 전, 충혈된 눈으로 꼼꼼히 잔부터 살핀다. 잔을 불빛에 비쳐보는 그의 눈을 응시하다 보면 나마저 취한다.

믿기지 않는 현실 이것 역시 꿈은 아닐까? 환상과 현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환상은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 

너무도 실감 나는 꿈을 꾸고는 실제라고 믿어버린 게 아닐까? 지금 하는 내 생각조차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가 존재한다. 거울 속 술주정뱅이가 나를 마주 보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어느 사무실의 싱크 배관을 고치러 갔다가 흘깃거리며 봤던 모습이다. 젊은이는 어느 멋진 풍경 사진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네다섯 명의 사무실 사람들끼리 어떤 의견 충돌이 있는 듯 보였다. 의견 충돌에도 붉어지지 않는 얼굴. 젊어서 아름다운 젊은이. 상대를 눌러보는 깊은 눈에 옅은 미소의 입꼬리. 삐딱한 고개를 펜으로 툭툭 치며 말은 없었다. 동시에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사라졌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언쟁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속에 묻혀, 그는 상상과 현실 그 어디쯤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응시하며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이는 그의 손은 섬세했고 눈빛은 몽환적이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봤다. 부러움을 애써 감췄다.



꿈속의 남자를 만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이 있었다는 게 꿈같아요."

"중요한 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저에게 아내와 아들이 있다면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요! 구분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도서관을 찾는다. 인터넷 속 사진들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제 모니터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는다. 갈 채비가 다 되었다. 몸을 힘차게 밀어 넣는다. 스위스의 어느 마을. 한가한 목동이 나에게 손짓한다. 베니스에서는 사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곧 베니스를 떠난다고 말하니 나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나도 그를 위해 기도 하겠다고 말한다. 언어가 중요하지 않은 세계다.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정글도 두렵지 않다. 다음 여행지는 한적한 바닷가가 될 것이다. 그곳에 가서는 가만히 바다만 바라볼 거다. 흔들리는 바다를 보며 길고 긴 상상을 시작할 것이다. 상상에 지치면 해변에 앉아 바닷물에  지워져 버릴 단어들을 하염없이 쓸 것이다. 내 인생의 단어를 쓸 것이다. 해 뜨는 모습에 감격할 것이고 해 지는 모습에 아쉬워할 것이다.  

경험도 기억도 불확실한 세계에서 지금은 어디쯤인가를 스스로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조바심 끝에 얻은 확증은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우 안심을 한다..



남자를 불러 본다.

"이제 돌아가도 될까요?

"어디로요?

"가족을 기다리던 제 아파트 A8로 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지금 중환자 실에 누워있습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꿈이 아닌 적이 있었을까요?"

희미해지는 남자의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당신은 곧 죽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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