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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Oct 25. 2024

그대로 서울 C5

같고 다른 삶

이사라고 할 것도 없는 이사를 마치고 삼 개월이 지났다.

어차피 힘든 이사는 아니었다. 승용차의 뒷좌석과 트렁크면 족할 크기의 짐들

맨해튼의 학원과 조금 더 멀어지긴 했지만 안전한 지역을 택했다.

강 건너 맨해튼 전경을 보며 뉴욕에 온 걸 실감하던 건,

전경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현실을 실감하게 됐다.

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 블록 끝의 부랑자들 때문에 애써 돌아가야 했던 길.

24시간 오가는 하늘의 지하철

저 멀리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인터넷 사진 마냥 현실감이 없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모여 산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아파트.

안전하다는 게 자랑인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피할 수 없는, 익숙하지만 적응 안 되는 냄새가 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갑자기 코를 찌르는 청국장 냄새에 깜짝 놀란다.

벽에 스며든 생선 냄새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선다.

기름기 질퍽한 공기가 피곤에 쳐진 몸을 맞이한다.

룸메이트 언니는 이틀째 소뼈를 끓이고 있다.

맛있는데 가장 싼 고기란다. 언제부터 뼈가 고기가 되었나.

음식 만드는 게 취미라더니 지난주에는 만두를 하루종일 만들기도 했다.

그 많은 만두는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내가 사놓았던 냉동실의 고기를 빼내던 언니.

"고기 냉동실에 오래 보관하면 맛 없어지는 거 알지?"


한국 학생이 태반인 영어 학원에 다니고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서울에서 보다 한국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도 다양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학원 학생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식당의 손님들.

아파트 건물의 이웃들.

그들을 복도나 로비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어느 땐 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닌 가?라는

의심마저 든다. 어쩌면 그렇게 적절치 않은 타이밍에 말을 거는 걸까?

그들의 첫마디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 건 지난번 살던 곳보다 이곳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또 다른 공통적인 말은 이 아파트에는 흑인과 스패니쉬가 없어서 좋다는 거다.

이들이 살면서 겪었던 흑인이나 스패니쉬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결국은 같은 수준의 사람들 아니었을까? 수준이 다르면 만날 일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들의 걱정은 이사 오는 중국인들이었다. 아파트가 시끄럽고 지저분해질 거란다.

그러면서도 이어폰 없이 켜져 있는 유튜브 방송이 내 귀에는 안 들어온다고 생각하는지 소음 속에서 

끝 모를 수다를 떤다.

약간의 지루한 표정을 지을라 치면 그때서야 눈치를 챙긴 듯 행동하며 늙은이가 주책이지?라고 묻는다.

가끔 할머니들이 건네주는 사과나 빵, 우유, 요구르트가 있다. 부담스러워 마다해도 손에 쥐어주 건 한다.

그 음식물이 무료 급식소에서 나눠주는 것이고 몇몇 노인이 기어코 한 두 개씩을 더 챙겨 온다는 이야기를 해준 건 어느 할아버지였다.

"저 여편네들이 한국 사람들 망신 다 시킨다니까.. 한 사람당 하나씩인데 꼭 한 두 개를 더 달라고 해.."

할아버지는 혀를 차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디서 중국 사람이나 하는 짓들을 하고 그러는지.."

중국 사람이 그러는 거 보셨어요? 할아버지는 돈 잘 버는 자식 자랑, 공부 잘하는 손주 자랑하시며 

무료 급식소는 왜 가세요?라고 묻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로 할머니들이 주는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건 잊지 않았다. 흔하기만 한 사과는 먹지 않은 지 오래됐다.


오늘도 멀어져 가는 맨해튼을 뒤로하고 플러싱 역에서 빠져나온다. 

거리의 고린내를 외면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늦은 밤 버스에 앉을자리가 없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버스 손잡이에 의지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영어 간판이 보기 드문 거리를 지나 버스에서 내린다.

꼭 한 번은 살고 싶었던 뉴욕. 욕망에 떠밀려 너무 멀리 온 건 아닌가.

이 거대한 도시에 완전히 혼자인 느낌이 들었다.

아니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룸메이트 언니가 얘기한다. 내가 냄새를 묻혀 집으로 온단다.

나에게서 언제나 반찬 냄새가 난단다. 

식당에서 일하는 나에게 할 얘기인가?

족발을 몇 시간이고 삶는 사람이 할 얘기인가?

이 언니는 언제쯤이나 본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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