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0년 만에 다시 탄 롤러, 깨달음을 얻다.

제주 서귀포 '플레이 롤러'

by 도도쌤 Aug 21. 2022
아래로

6살 아들내미 물건 뒤지기 선수다. 이틀 전, 아내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사놓은 스펀지밥 인라인 보호장구를 찾아냈다. 헬멧, 팔꿈치 보호대, 무릎보호대, 그리고 손목 보호대까지 완벽하게 다 차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다가오는 일요일 꼭 아빠랑 인라인을 타러 가자고 다.


일요일 아침 7시. 일찍도 일어났다.

 "아빠, 아빠, 인라인 스케이트 타러 가요!"라며 인라인 보호장구를 주섬주섬 챙긴다. 7살 딸도 덩달아 옆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한다. 바퀴 달린 신발을 처음 신은 아들, 잡아달라며 고래고래 고함이다. 아파트 밖에 나와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저절로 움직이는 바람에 쿵 넘어졌다. "으아앙~무서워~ 얼른 신발 갖고 와!"라고 하는 아들. 인라인 스케이팅의 매운맛을 제대로 경험했다.


딸은 좀 더 타고 싶은데 동생이 안 타니 별 재미가 없다. 게다가 조카 녀석은 인라인도 없어서 한없이 심심하다. "이모부, 롤러 타러 가면 안 돼요?"라고 슬 나를 떠본다. 나도 조카 녀석을 다시 떠 본다. "좋지. 근데 아들도 같이 가야 하니 아들 한 번 롤러 타러 가자고 해 봐 봐!" 미끼를 문 조카, 아들을 잘도 구워삶는다. 롤러는 앞 뒤로 바퀴가 4개 있어서 안 넘어진다느니 인라인보다 훨씬 쉬우니 타러 가자고 한다. 누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는 아들내미 5분의 설득 끝에 가자고 한다.


서귀포 '플레이 롤러'장 by도도쌤서귀포 '플레이 롤러'장 by도도쌤

롤러장, 초등학교 때 왔으니 30년 만이다. 감회가 새롭다. 아침 댓바람부터 왔더니 우리가 첫 손님이다. 가격도 제법 한다. 아이들이 9000원이고 어른은 11000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장구에다 롤러까지 신은 아이들 넘어져도 안전하겠다 싶다. 조카와 딸은 인라인을 타니 롤러도 금방 탄다. 문제는 아들내미다. 10센티도 못 가서 쿵 하고 넘어진다. 그냥 구경만 하려다 아들내미 손을 좀 잡아주고 가르쳐줘야겠다 싶어 나도 타기로 한다.


롤러. 끈이 예쁘다. by도도쌤롤러. 끈이 예쁘다. by도도쌤


롤러를 신고, 무릎보호대와 손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어른용 팔꿈치 보호대가 없어서 순간 아이 꺼를 하려다 설마 팔꿈치 다칠 일이 있겠냐면서 안 했다. 빨리 아들내미 도와준다는 마음에 헬멧까지 깜빡했다. 아들을 도와주려고 들어간 롤러장. 30년 전 한 롤러 했던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발이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몇 바퀴째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전속력으로 나도 모르게 돌고 있었다.


조카 녀석도 제법 잘 탄다. 시원시원하게 미끄러지며 속도를 즐긴다. 5학년 조카 녀석을 순간 앞질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더 올렸다. 너무 속도를 올려서 그런지 순간 몸이 뒤로 확 젖혀졌다. 그러면서 몸이 붕 공중 떴다. '아! 꼼짝없이 죽는구나!' 그 생각과 동시에 1초 2초 3초 영상이 새카맣게 변했다. 엉덩이가 '쾅' 땅바닥에 세게 부딪힌 순간 살아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왼쪽 팔꿈치가 바닥을 강타했다. 그리고 목까지 퍽 꺾였다.


"이모부, 괜찮아요?"라고 묻는 조카. 괜찮다고 대답은 했는데 괜찮지가 않다. 왼쪽 엉덩이 깊숙이 통증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왼쪽 팔꿈치를 보니 롤러 바닥에 쓸려 살갗이 벗겨졌다. 귀찮아서 안 한 팔꿈치 보호대가 한없이 생각났다. 안전하게 핼맷도 했으면 목 보호도 됐을 텐데 하며 다치고 나서야 후회가 잔뜩 밀려왔다. 그러면서 깨우쳤다.

까진 왼쪽 팔꿈치 by도도쌤까진 왼쪽 팔꿈치 by도도쌤

뭔가 조금이라도 찝찝하면 귀찮더라도 라는 걸,
그 사소함에서 항상 뭔가 일이 일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꼭 그 부분에서 중요한 시험 문제가 나오고,
꼭 그 부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 내가 신나게 혼자서 롤러 타고, 혼자서 시원하게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우리 아들내미 포기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쾅, 뒤로 쾅, 슬라이딩 쿵쾅광 그렇게 넘어지는데도 아빠한테 힘들다며 짜증 한 번 내지도 않다. 자세히 보니 롤러장 전체를 손으로 붙잡고 한 바퀴 돌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혼자서 터득하고 있었다.  안 넘어지는 요령을 익히고 있었다. 100번을 넘게 넘어지고 스스로 서 있는 법을 익히는 아들이다.

롤러를 타고 두 발로 선 아들내미, 장하다. by도도쌤롤러를 타고 두 발로 선 아들내미, 장하다. by도도쌤

"우리 아들 진짜 많이 늘었네."

라고 궁둥이 팡팡 쳐주며 진심으로 칭찬을 가득해 주었다. 칭찬을 들은 아들 내 앞에서 더 열심히 한다.

"아빠, 아빠 저 혼자 한 바퀴 돌았어요."라고 그런다.  스스로도 뿌듯한 모양이다. 서 있지도 못했는데 아니 롤러를 기어서 타기 시작했는데 3미터는 뜨덤뜨덤 온 정신을 집중해가며 앞으로 간다. 10센티도 혼자 못 갔는데 이만하면 대 성공이다.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롤러를 익히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고 내가 다 배운다. 수없이 넘어져야 하는 거다. 정말이지 그저 주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 걸 깨닫는다.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다 보니 안 넘어지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는 거다. 떠듬떠듬 앞으로 가는 아들 모습에 뭐든지 앞으로 잘하겠구나라는 안심이 밀려온다. 난 원숭이가 되어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우리 아들은 거북이처럼 천천히 전진하며 자신만의 목적지를 통과하고 있었다.


오늘 롤러를 타며 배웠다.


잘한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호장구는 귀찮더라도 하나라도 빠짐없이 다 차야한다는 것을,

처음이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수없이 넘어지면

안 넘어지는 법을 스스로 익힐 수 있다는 걸,


팔꿈치 보호대는 필수다. by도도쌤팔꿈치 보호대는 필수다. by도도쌤

정신은 한 수 배웠는데 몸은 사정없이 아프다.


'아! 뒷목이야!'

'아! 엉덩이야!'

'아! 팔꿈치야!'


30년 만의 첫 롤러 후유증이 제법 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신화 월드 워터파크에서 어른들이여 스트레스를 날려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