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어마어마한 TMI였다. 독자님들은 많이 궁금하실 거다.
그래서 그 병이 어떻다는 건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건데?
그래서 그 병이 어떻다는 건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건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이젠 나의 양극성 정동장애와 공황장애에 대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병이란 게 참 신기한 게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면서도 개인마다 다른 발현을 보인다. 그럼 나의 공황장애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공황발작
기억을 되짚어 공황발작에 대한 글을 쓰는데 식은땀이 난다. 몸이 기억하는 예기 불안 같은 거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황발작에 대해 써보려 한다.
그 공황 발작은 한 여름 을지로 대로변에서였다. 햇빛은 아스팔트 바닥을 태워버릴 듯 내리꽂았고 을지로 대로변에선 고층 빌딩을 짓는 공사장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를 가격해왔다.
그날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무슨 용무였는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외출을 해야 했던 일이 있어서 을지로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려 버스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호흡이 가빠지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어지러웠다. 감각이 이상해졌다.
공사장 소리가 귀를 멀게 할 정도로 날카롭고 무겁게 들려왔다. 마치 여러 개의 날카로운 바늘로 고막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귀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웠다.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와 경적소리도 더해져 고음과 저음이 합쳐진 채로 내 몸을 때렸다. 소리에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공기의 흐름이 이상해졌다. 하늘에 닿을 만큼 어마어마한 높이의, 아주 가느다란, 가시 돋친 철기둥이 촘촘히 나를 압박해오는 것처럼 공기가 변했다. 압박당해 숨을 쉴 수 없고, 철기둥에 박힌 가시가 내 몸을 점점 깊숙이 찔러오며 살이 찢어지고 가시 사이로 찢어진 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구토가 치밀었다. 헛구역질을 했다. 빈 속에선 위액 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강할 때처럼 내장에 중력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구토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속의 숨만 힘겹게 게워낼 수밖에 없었다.
한 여름이었다. 몹시도 덥고 태양은 작렬했다. 그 빛에 시신경이 멀 것 같았다. 눈이 너무 부셔 뒤통수까지 타는 듯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눈이 건조해서 바싹 말라버려 아파하는 것의 100배는 넘는 고통이었다. 누가 캅사이신을 눈알에 뿌려 버무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눈알을 파버리고 싶었다. 눈알을 파버 리는 고통이 발작을 일으키며 느끼는 고통보다 덜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핑 돈다. 숨이 가빠온다. 심장이 질주한다. 감각이 임계치를 넘어섰다. 죽을 것 같다. 공포가 나를 휘감고 정신을 잃는다.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이성적인 생각이 우선 멈춘다. 감각이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과하게 입력된다.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이성적인 생각이 우선 멈춘다. 감각이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과하게 입력된다.
나 같은 경우는 발작이 오고 질식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실례’를 범할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속된 말로 똥오줌 지릴까 봐 걱정되고 수치스러웠다. (그럴 일은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안심시켜주었지만 여전히 걱정되긴 한다.)
정신을 잃거나 어지러워 쓰러지면 여기저기 추가적으로 다치기도 한다. 숨이 안 쉬어지는 고통이 제일 힘들다. 곧 죽을 것 같거든. 저승사자가 코 앞에서 목을 틀어쥐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건 공황발작은 수 분에서 수 십 분이면 사라진다는 점? 겨우 호흡이 돌아오고 눈물 콧물 다 빼며 땅바닥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널브러져 있으면 매우 쪽팔리고 허탈하다.
죽었다 살아난 것 같고 온 몸에 힘은 다 빠져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픈 이야기인데, 당시 공사 중이던 을지로입구역의 빌딩이 얼마 뒤 완공되었고 몇 년 뒤 나는 그 빌딩에 입주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퇴근 버스 정류장은 내가 공황 발작을 일으켰던 장소라 매번 퇴근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