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병 초기의 일이다.
짙은 우울에서 조증으로 뛰어올랐다. 치료를 막 시작한 단계여서 몸도 정신도 잡히지 않고 요동치던 시기였다.
발병해서 휴학을 했고,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증의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마침 학교 선배가 자신이 일하던 학원에 사무보조를 구한다고 말해줬고, 그녀가 평소 나를 좋게 보고 친하게 여겼던 덕분에 면접도 형식적으로 보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나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히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꼈고 공황발작이 심하게 와 출근을 못하게 되었다. 며칠을 무단결근하고 겨우 출근해서 담당자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죄송하다. 공황장애가 잡히지 않아 일을 지속할 수 없다. 그만둬야겠다.’
그때 담당자가 그랬다.
“연예인 하시면 되겠네요.”
“연예인 하시면 되겠네요.”
그도 화가 났으리라. 기껏 추천받아 사람 뽑았더니 일도 며칠 못하고 무단결근해버리고 결국 그만둔다고 하니.
당시 연예인들이 줄줄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음을 ‘커밍아웃’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나는 예술에 대한 갈증을 느끼다 연기학원에 등록해 막 다니기 시작하던 것을 담당자가 알고 있었기에 그런 말이 나왔으리라.
근데 나는 한껏 비꼬는 담당자의 말에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더 크게 울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말에 큰 상처 받았고 거북이가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기듯 한동안 나를 숨기고 다녔다.
그 뒤로는 내 병을 오픈하는 것에 있어서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정신병자다.' 그 낙인이 나를 짓눌렀다.
사람들은 정신병자를 원하지 않는다. 나를 받아 줄 사람은 없다. 징징거리지 말아야지. 아프다고 하지 말아야지. 미움받지 않게 처신을 잘해야지. 나는 주문처럼 되뇌며 내 속으로 침전했다.
연기학원에서도 잘 풀릴 리가 없었다.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었고 연극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이 지독히도 나를 억압하고 있던 사람이란 것을 배웠다.
진실된 표정이나 대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표현하는 것도,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눈물을 보이기가 부끄러웠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몸으로 표현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대본을 읽으면서 감정선이나 상황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다. 학대당하는 역할의 대본을 읽으면 마치 내가 학대를 당한 것처럼 아프고 괴로웠다.
결국 연기학원도 몇 개월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짙은 패배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것 마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