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다이소 막걸리잔이지만
밖에서 이것저것 구워 먹을 작은 무쇠 팬도 하나 장만하고, 이것저것 끓여먹을 반합도 하나 장만하고 나니 몇 끼를 나가 있어도 제법 다양한 음식들 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않으면 눕고 싶고, 누면 자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일까요. 음식의 종류가 늘어가니 깔끔하게 먹으려면 앞접시도 필요하고 국물도 덜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에 있는 앞접시를 가져가서 먹기에는 깨질 것 같기도 하고, 수납도 불편하고 해서 남들은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이런저런 콘텐츠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유독 '시에라 컵'이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오목한 금속 재질의 컵인데, 컵이나 잔으로 쓰기도 하고, 그릇으로 쓰기도 하는 다용도 물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에라라는 단어가 특정 브랜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긴 디자인을 시에라 컵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딱히 안쓸 것 같은 디자인인데 왜 다들 이게 필수품이라고 하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피크닉과 차박을 나가보니 알겠더군요. 야외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테이블 공간이 마땅치 않을 때도 있어서 사용할 때 손잡이를 잡으면 편리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도 어디 걸어두기 편하게 만들어진 디자인이었습니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바로 불 위에 올릴 수도 있고, 백패킹과 같이 짐을 미니멀하게 꾸리시는 분들은 이걸 커피 한잔 정도의 물을 끓일 때도 쓰시더군요. 손잡이는 이 상황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뜨거운 액체가 담긴 그릇을 장갑 없이 잡으려면 손잡이가 꼭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캠핑용품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나 있으면 잘 쓸 것 같기는 한데 컵 하나에 몇만 원씩 주고 산다는 게, 아직 변변한 텐트도 없이 차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캠핑 입문자인 제게는 조금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시에라 컵을 키워드로 넣고 저렴한 상품이 없는지 검색을 하다가 재미있는 글을 몇 개 볼 수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조선 시에라'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 글이었습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양은 막걸리잔을 '조선 시에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더군요. 가만히 보니 사실 시에라 컵과 모양도, 크기도 엇비슷했습니다. 스테인리스나 고급 티타늄 같은 재질은 아니라고 해도 얼추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렇게 시에라 컵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이 며칠 지나고 나서, 우연히 다른 물건을 구매할 것이 있어서 다이소에 들렸습니다. 물건을 찾아 여기저기를 살피던 차에 이 양은 막걸리잔이 눈에 띄더군요. 실제로 보고 나니 크기도 적당해 보였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시에라 컵 디자인은 개당 천오백 원, 두 개를 사면 3천 원이었습니다. 일단 한번 사용해 보기에 부담이 없었기에 그렇게 두 개를 구매해 왔습니다.
저는 보통 새로운 분야의 물건을 살 때 처음부터 아주 좋은 것을 사지는 않습니다. 여유 있는 분들은 중복 지출을 피하기 위해서 보통 가장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시는데, 저는 비싼 돈을 투자했다가 생각보다 흥미를 갖지 못하거나 활용을 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저가 제품을 구매하고, 재미를 느낀 후 본격적으로 들어갈 때 좋은 물건을 사는 편입니다.
집에 도착해서 다른 캠핑 조리도구와 정리를 하니 사이즈도 아주 적당하더군요. 지난번에 구매했던 1L 크기의 알루미늄 반합 안에 두 개를 겹쳐서 넣으면 마치 크기를 맞춘 것처럼 쏙 들어갔습니다.
음식을 덜어먹을 수 있게 되니 식사가 한결 정돈된 기분이 듭니다. 특히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더군요. 음식을 담기기에도 좋고, 테이블이나 바닥에 흘리는 일도 줄어서 정리할 것들도 줄었습니다. 물론 반대로 닦아야 할 그릇이 늘어나기는 했지만요. 대신 바로 물을 끓을 수 있어서 반합을 정리하는 것처럼 바로 정리하면 그렇게 번거롭지는 않았습니다.
불 위에 바로 올릴 수 있다 보니 아침에 물을 끓여서 커피나 차를 한잔 즐기기에도 괜찮았습니다. 아직 주전자나 물을 끓일만한 도구는 장만하지 않았거든요. 한 번에 끓일 수 있는 물의 양이 많지는 않다 보니 두 명이서 티타임을 즐기려면 몇 번 계속 물을 끓여야 하기는 합니다.
제대로 된 티타늄 시에라 컵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양은 막걸리잔은 손잡이까지 열 전도가 엄청 잘 됩니다. 음식을 덜어 먹을 때는 괜찮은데, 불 위에서 물을 끓이고 나서는 바로 손잡이를 잡았다가 손에 물집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장갑이나 헝겊을 챙겨야 된다는 것이 조금 번거롭기는 합니다.
불 위에 올릴 때도 조금 주의가 필요하긴 합니다. 이것도 제대로 된 시에라 컵은 제가 아직 안 써봐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가스불은 완전연소가 되어서 그을음이 그릇에 남지 않는데, 모닥불에 바로 올리면 밑바닥이 새까맣게 변합니다. 본의 아니게 제 것과 아내 것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변해버렸죠. 이후 가열은 제 것으로만 하고 아내 것은 그냥 전용 앞접시나 컵으로 쓰고만 있습니다.
그냥 바비큐만 해 먹거나, 뭘 좀 끓여먹을 때 까지는 몰랐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따뜻한 차도 한두 잔 마시다 보니 물을 제대로 끓일만한 물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집에 있는 주전자를 들고나가볼까 주방 찬장을 뒤적거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 아예 주전자가 없더군요. 커피 핸드드립 하는 주둥이가 길게 빠져서 들고 다니기 안 좋아 보이는 - 직접 물을 끓이지 않는 - 그 주전자만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혼 후 살림을 꾸려서 십수 년을 살았는데 주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긴 전기포트가 있는데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있을 이유는 없겠죠.
캠핑용 주전자는 수납 때문인지 몇 가지 각기 다른 디자인들이 있더군요. 텀블러랑 냄비 중간 정도 같이 길게 빠져서 컵을 수납하는 것도 있고, 불에 닿는 면적이 많게 납작하게 빠진 것도 있었습니다. 아직 주전자까지 새로 살 생각은 없습니다.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가성비 있는 물건이 생기면 하나 들여볼 수도 있긴 하지만요.